“올 상반기에만 지구 7바퀴 돌아…시차 느낄 여유도 없어”/반기문 총장 인터뷰
페이지 정보
조회 조회 1,114회 작성일2011-05-10 18:56:00본문
“임기 중 기후변화협약만큼은 분명한 성과를 남기겠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그가 사무총장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유엔 사무총장 2년 반 동안 그는 영광과 좌절을 동시에 겪었을 것이다. 192개 회원국의 이해는 유엔 안보리와 총회에서 첨예하게 충돌한다. 강대국과 중소 국가의 이해가 다르고 선진국과 후진국의 이해가 부닥친다. 유엔 사무총장은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하면서 분쟁을 줄이고 기아와 질병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반 총장은 이로 인해 “비판에 너무 구애받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잘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휴가와 공무를 겸해 9일 한국에 오는 반 총장을 최근 본지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 38층 사무총장실에서 만나 밤낮없이 지구촌의 문제 있는 데를 찾아다니는 세계최고위 외교관의 25시, 그의 애환을 들었다. 반 총장은 “결렬될 뻔했던 2007년 발리 기후변화 협약회의를 되살려 발리 로드맵을 만들어낸 게 지금까지의 가장 큰 성취”라고 설명했다.
만난 사람=김영희 대기자
김영희=유엔 사무총장 5년 임기의 중간점을 통과하셨습니다. 소감이 어떻습니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미국 뉴욕 유엔본부 38층 사무총장실에서 본지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와 인터뷰했다. 5년 임기의 절반을 보낸 그는 “회원국의 다양한 이해가 부딪치는 가운데서도 비판에 구애받지 않고 소신껏 일하겠다”고 밝혔다. [뉴욕지사=신동찬 기자]
반기문 총장=세계에는 복잡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엔에 대한 기대가 크고, 거기서 받는 중압감 때문에 하루하루를 사무총장 처음 시작하는 각오로 그야말로 최고의 열정을 가지고 2년 반 동안 일을 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걸 국제사회 최고 어젠다로 올려놓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어요. 기아와 질병도 서울에선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요. 유엔의 일이라는 게 전부 다 현재진행형이니까 평가는 엇갈릴 수 있어요. 엇갈린 평가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유엔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참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어느 한때는 너무 낮았던 유엔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건 좋은 일 아닙니까.
좋은 일이죠. 유엔의 역사도 이제 63년이나 되는데 20세기를 거쳐 21세기로 오는 과정에서 유엔의 역할이 이만큼 강조되고 요구된 적은 없었습니다. 글로벌 위기가 어쩌다 보니 제가 사무총장 2년 반 하는 사이 한꺼번에 닥친 상황이 됐습니다. 100년 만이라는 세계 경제위기와 식량위기도 지난해 발생했습니다. 한국에선 식량위기를 실감하지 못하지만 전 지구적으로 보면 10억 명 이상이 기아 상태에 있어요. 그리고 질병과 국제분쟁도 많이 폭발했고 역병도 40년 만에 처음 들이닥쳤어요.
-그동안 여행을 얼마나 하신 겁니까.
전체 마일리지는 계산해보지 않았지만 올 1월부터 7월 초까지만 해도 29만2400㎞를 여행했습니다. 지구 한 바퀴 도는 데 4만㎞라면 올 상반기에 지구를 7바퀴 돌았어요. 3주 전 토요일 영국에 가서 일요일에 연설하고 월요일 돌아왔고, 목요일 이탈리아로 가서 중동 문제 회의에 참석한 뒤 토요일 돌아오고, 월요일엔 일본·미얀마·제네바·아일랜드·G8회의를 거쳐 토요일 돌아와서 다시 월요일 이집트에서 열린 비동맹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지난 금요일 돌아왔죠. 그리고 내일 중국으로 떠납니다. 세계가 나를 필요로 하니까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매일 다른 어젠다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만나고 있습니다.
-건강은 어떻게 유지합니까.
식사 잘 하고 잠 잘 자는 것 말고 건강유지법은 없습니다. 다행히 비행기나 지상에서나 현지 시간에 맞춰 잠을 자고, 다시 돌아오면 뉴욕시간에 적응해 시차를 못 느끼는데 이건 아마도 사명감 하고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외교관 시절엔 시차를 느꼈거든요. 그땐 미국에 출장 오면 낮에 졸렸는데 유엔 사무총장 되고 나서는 그런 걸 느낄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유엔 창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세계평화입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 핵을 비롯해 이란·이라크·파키스탄·팔레스타인·아프가니스탄 등 지구란 몸뚱이는 온통 상처투성이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2년 반 일하신 경험으로 봐서 영원한 평화는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인류의 꿈입니까.
유엔 헌장의 이념은 영구 평화를 추구하는 건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아프리카에선 거의 어느 한 나라 분쟁이 없는 지역이 없어요. 세계적으로 유엔 평화유지군이 16개 지역에 나가 있고 인원도 11만5000명이나 됩니다. 해외주둔군만 따지면 미국 대통령 다음으로 제가 세계 두 번째 사령관이 됩니다. 지금 유엔은 예방 외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방 외교라는 게 말은 쉬운데 각 국가가 예방 외교에 투자를 잘 안 해요. 문제가 터졌을 때 들어가는 게 평화유지(peace keeping)지만 지금 우리는 평화 만들기(peace making)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영원한 평화를 위해 늘 준비를 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데서 유엔의 역할이 나오는 겁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느낀 좌절감 같은 건 없으십니까. 꼭 하려고 했는데 마음대로 안 됐다거나 하는.
사무총장이 내 입으로 좌절을 느꼈다고 하기 좀 어렵습니다. 모든 게 진행 중인데 모든 걸 성취했다고 이야기하기도 좀 그렇고 일찍 좌절했다고 하기도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메시지가 항상 좋게 나가야 일이 긍정적으로 풀리니까요.
-그럼 질문을 바꿔보지요. 지난 2년 반 동안 가장 성취감을 느낀 건 뭡니까.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절반이거나 절반의 절반일 텐데 다 이뤄졌다고 말하기는 뭣합니다만 극적인 순간들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 세계가 지금 기후변화 문제로 고심하는데 2007년 12월 발리에서 기후변화협약 회의가 열렸어요. 그런데 그 회의가 일단 결렬된 것을 되살려 발리 로드맵을 만들어냈습니다. 거기서 기후변화 협상의 발판이 만들어져 올 12월의 중요한 코펜하겐 회의를 맞게 된 거죠.
-결렬 직전의 발리 회의를 반전시켜 발리 로드맵을 성사시킨 건 반 총장의 큰 업적으로 기록될 것인데 회의 분위기를 어떻게 돌렸는지 좀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2007년 12월 15일이었어요. 오전에 열린 기후변화협약 13차 당사국 총회장 분위기는 어수선했습니다. 폐막 시한인 14일을 넘긴 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회의장에서 각국 대표단은 언성을 높여 가며 자국의 입장만 강조하고 있었어요. 나는 나흘 전인 11일 회의에 참석한 뒤 다른 일정 때문에 발리를 떠나 있다가 15일 오전 10시 발리 회의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동티모르를 거쳐 일본으로 갈 일정이었지만 발리 회의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보고를 받고 발리로 돌아간 거죠. 나는 곧바로 협상을 시작했어요. 협약 초안은 물론이고 의장의 중재안도 거부하던 중국·인도 등 개도국 대표를 별도로 불러내 설득했습니다. 그런 뒤 대표단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회의장에 들어선 겁니다. 나는 “어느 나라도 모두를 얻을 수는 없고, 완전히 만족할 수도 없다”는 말로 합의를 위한 양보를 호소했어요. 오후 3시를 지나면서 각국 대표의 발언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오후 4시20분 마침내 ‘발리 로드맵’이 탄생했습니다.
- 발리 로드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012년 유효기간이 끝나는 기존 교토의정서는 39개 선진국이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감축할 것을 선언한 것인데 발리 로드맵은 2013년 이후 미국과 개도국도 감축에 참여하기로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만 중국 등 개도국과 미국의 이해가 엇갈려 구체적인 감축 목표수치는 2009년 12월 코펜하겐 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유엔 안보리가 핵실험을 한 북한을 제재하는 결의안 1874호를 채택했습니다. 제재결의안의 이행 성적표는 어떻습니까.
제재위원회가 구성이 돼 구체적인 제재 대상이 결정된 것이 큰 진전입니다. 유엔 안보리에서 여러 나라에 대해 제재 결의를 했는데 제재 결의안 내용이 강도 면에서 아주 센 것입니다. 게다가 중국·러시아까지 동참을 했어요. 사실은 2006년 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했을 때 안보리 제재 결의를 했습니다. 제재 결의만 해놓고 제재위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죠. 그냥 명목상 제재를 한다고 해놓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재를 한다는 게 없다가 이번에는 제재에 관한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람과 기관과 같은 대상을 목록으로 만들었습니다. 터키대사를 위원장으로 제재위원회가 구성된 건 이전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지난번 북한 선박 강남호가 북한으로 회항한 것도 국제사회가 가한 집단 압력의 성과죠.
-중국이 결의안 문구를 약화시킨 건 아쉽지 않습니까.
중국도 내용 자체는 전적으로 지지했고 토의하는 과정에서도 별 이견이 없었습니다. 다만 문서로 제출했을 때 중국·러시아의 개별적인 이해관계가 있어 약간 톤다운한 건 사실이지만 내용 자체는 상당히 강한 겁니다.
-북한 문제에 직접 나설 여지는 없나요.
그런 가능성을 제가 당선될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죠. 그러나 그동안 6자회담이 진행되고 공동성명도 채택되고 비핵화 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 같았죠. 그런 과정에서 사무총장으로서 측면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 대화의 문이 전부 닫힌 상황에서 유엔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촉도 과거에 해왔고 지금도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복안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지난해 여름 삿포로에서 인터뷰할 때 한국의 세계화가 좀 미흡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신가요.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온 후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수준에는 아직 못미침니다. 국제 경제위기 해소, 기후변화 문제, 식량위기 등에서 한국이 보는 시야가 아직은 국내 지향적인 거 같고요.
-한국 의 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국제사회가 한국을 보는 잣대와 한국인이 스스로를 보는 잣대에 차이가 커요. 국제사회의 기대에 한국인이 잘 부응을 못하고 있다고 봐야죠.
-우리 스스로가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다, 실제보다 우리 스스로를 높이 보고 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스스로는 높은데, 실제로 잘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잘하고 있기도 합니다. 민주화라든지 경제사회 발전, 정보화에서 조선·자동차 등등 주요 산업에서 세계 10위에서 15위에 들어가 있는 반면에 한국이 내고 있는 공적개발원조(ODA) 같은 게 너무 적죠. 예를 들어 새천년개발목표(MDG·Millennium Development Goals) 달성을 위해 2015년까지 국제사회 목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민소득(GNI)의 0.7%인데 한국의 2015년 목표는 0.3~0.35% 정도니까 훨씬 부족한 거죠.
-한국의 젊은이들은 유엔본부나 산하기구에 진출하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합니까. 외국어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닐 것 같은데.
그렇죠. 외국어도 잘해야 하지만 국제적인 시야도 넓히고 국제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정신이 돼 있어야죠. 한국 사람들은 유엔의 각 기구에서 열심히 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이 유엔에 지원하는 규모에 비하면 참여의 폭이 적지만 사실 돈을 많이 내는 나라일수록 기여에 비해 참여 폭은 적은 게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게 미국이나 일본이죠. 돈 내는 거에 비하면 유엔기구에서 일하는 사람 숫자가 턱없이 적죠. 그에 비하면 한국은 그렇게 적은 건 아니라고 봐야죠. 참여율로 보면 한국은 지금 11위죠. 제가 사무총장이 된 이후 고위직에도 꽤 많이 진출했습니다.
-뉴욕에 오는 한국의 지도급 인사들이 너도나도 반 총장 만나 사진 찍으려는 사례가 좀 지나치다고 들었습니다.
초기에 좀 그런 사례가 많았지만 내가 좀 엄격하게 제한을 했습니다. 나는 세계 각국의 외무장관급 이상 정상까지 와서 접견하기도 상당히 바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유엔에 특별한 이슈 없이 오신 분은 접견을 사양할 수밖에 없어요. 불가피하게 제가 만나야 할 개인적인 친분관계는 관저에서 주말을 활용해 만나 가급적 공적인 것과 분리하느라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한국 언론과 인터뷰도 김영희 대기자와 두 번 하고 연합뉴스와 한 번 한 것이 전부입니다. 방송 특집도 사양했어요. 가급적 한국적인 것에 영향을 받거나 신경을 쓰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민감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서양 언론들이 반 총장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많이 싣고 있는데 왜 그런 것 같습니까.
유엔의 최고위 공직자에 대한 기대도 있고 비판도 있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건설적인 비판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습니다. 192개 회원국의 기대와 입장이 다 다르고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이 달라요. 언론도 여기 출입하는 기자만 300~400명이 될 텐데 그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 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약간이라도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하면 비판적인 기사가 나오죠. 나는 그런 것에 너무 구애를 받기보다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앞으로 잘 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엔은 수직적인 조직이 아니라는 걸 간과하고 있어요. 유엔 사무총장이 회원국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 없죠. 여긴 수평적인 조직이어서 부단히 협상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192개국 하고 협상해서 합의가 나오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좌절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좌절만 있는 건 아닙니다. 지난 4월 런던 G20 정상회의에서 국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1조 달러를 모금하자고 제안했어요. 어마어마한 액수지만 1조1000억 달러를 모금했어요. 지난해 도야코 G8 정상회의에서는 말라리아 문제를 호소해 10억 달러를 모았습니다. 10억 달러면 10달러짜리 모기장 1억 개를 만들어 5억 명의 어린이를 구할 수 있다고 호소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바쁘신 중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중앙일보/2009년 8월 8일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그가 사무총장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유엔 사무총장 2년 반 동안 그는 영광과 좌절을 동시에 겪었을 것이다. 192개 회원국의 이해는 유엔 안보리와 총회에서 첨예하게 충돌한다. 강대국과 중소 국가의 이해가 다르고 선진국과 후진국의 이해가 부닥친다. 유엔 사무총장은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하면서 분쟁을 줄이고 기아와 질병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반 총장은 이로 인해 “비판에 너무 구애받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잘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휴가와 공무를 겸해 9일 한국에 오는 반 총장을 최근 본지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 38층 사무총장실에서 만나 밤낮없이 지구촌의 문제 있는 데를 찾아다니는 세계최고위 외교관의 25시, 그의 애환을 들었다. 반 총장은 “결렬될 뻔했던 2007년 발리 기후변화 협약회의를 되살려 발리 로드맵을 만들어낸 게 지금까지의 가장 큰 성취”라고 설명했다.
만난 사람=김영희 대기자
김영희=유엔 사무총장 5년 임기의 중간점을 통과하셨습니다. 소감이 어떻습니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미국 뉴욕 유엔본부 38층 사무총장실에서 본지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와 인터뷰했다. 5년 임기의 절반을 보낸 그는 “회원국의 다양한 이해가 부딪치는 가운데서도 비판에 구애받지 않고 소신껏 일하겠다”고 밝혔다. [뉴욕지사=신동찬 기자]
반기문 총장=세계에는 복잡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엔에 대한 기대가 크고, 거기서 받는 중압감 때문에 하루하루를 사무총장 처음 시작하는 각오로 그야말로 최고의 열정을 가지고 2년 반 동안 일을 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걸 국제사회 최고 어젠다로 올려놓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어요. 기아와 질병도 서울에선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요. 유엔의 일이라는 게 전부 다 현재진행형이니까 평가는 엇갈릴 수 있어요. 엇갈린 평가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유엔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참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어느 한때는 너무 낮았던 유엔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건 좋은 일 아닙니까.
좋은 일이죠. 유엔의 역사도 이제 63년이나 되는데 20세기를 거쳐 21세기로 오는 과정에서 유엔의 역할이 이만큼 강조되고 요구된 적은 없었습니다. 글로벌 위기가 어쩌다 보니 제가 사무총장 2년 반 하는 사이 한꺼번에 닥친 상황이 됐습니다. 100년 만이라는 세계 경제위기와 식량위기도 지난해 발생했습니다. 한국에선 식량위기를 실감하지 못하지만 전 지구적으로 보면 10억 명 이상이 기아 상태에 있어요. 그리고 질병과 국제분쟁도 많이 폭발했고 역병도 40년 만에 처음 들이닥쳤어요.
-그동안 여행을 얼마나 하신 겁니까.
전체 마일리지는 계산해보지 않았지만 올 1월부터 7월 초까지만 해도 29만2400㎞를 여행했습니다. 지구 한 바퀴 도는 데 4만㎞라면 올 상반기에 지구를 7바퀴 돌았어요. 3주 전 토요일 영국에 가서 일요일에 연설하고 월요일 돌아왔고, 목요일 이탈리아로 가서 중동 문제 회의에 참석한 뒤 토요일 돌아오고, 월요일엔 일본·미얀마·제네바·아일랜드·G8회의를 거쳐 토요일 돌아와서 다시 월요일 이집트에서 열린 비동맹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지난 금요일 돌아왔죠. 그리고 내일 중국으로 떠납니다. 세계가 나를 필요로 하니까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매일 다른 어젠다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만나고 있습니다.
-건강은 어떻게 유지합니까.
식사 잘 하고 잠 잘 자는 것 말고 건강유지법은 없습니다. 다행히 비행기나 지상에서나 현지 시간에 맞춰 잠을 자고, 다시 돌아오면 뉴욕시간에 적응해 시차를 못 느끼는데 이건 아마도 사명감 하고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외교관 시절엔 시차를 느꼈거든요. 그땐 미국에 출장 오면 낮에 졸렸는데 유엔 사무총장 되고 나서는 그런 걸 느낄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유엔 창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세계평화입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 핵을 비롯해 이란·이라크·파키스탄·팔레스타인·아프가니스탄 등 지구란 몸뚱이는 온통 상처투성이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2년 반 일하신 경험으로 봐서 영원한 평화는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인류의 꿈입니까.
유엔 헌장의 이념은 영구 평화를 추구하는 건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아프리카에선 거의 어느 한 나라 분쟁이 없는 지역이 없어요. 세계적으로 유엔 평화유지군이 16개 지역에 나가 있고 인원도 11만5000명이나 됩니다. 해외주둔군만 따지면 미국 대통령 다음으로 제가 세계 두 번째 사령관이 됩니다. 지금 유엔은 예방 외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방 외교라는 게 말은 쉬운데 각 국가가 예방 외교에 투자를 잘 안 해요. 문제가 터졌을 때 들어가는 게 평화유지(peace keeping)지만 지금 우리는 평화 만들기(peace making)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영원한 평화를 위해 늘 준비를 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데서 유엔의 역할이 나오는 겁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느낀 좌절감 같은 건 없으십니까. 꼭 하려고 했는데 마음대로 안 됐다거나 하는.
사무총장이 내 입으로 좌절을 느꼈다고 하기 좀 어렵습니다. 모든 게 진행 중인데 모든 걸 성취했다고 이야기하기도 좀 그렇고 일찍 좌절했다고 하기도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메시지가 항상 좋게 나가야 일이 긍정적으로 풀리니까요.
-그럼 질문을 바꿔보지요. 지난 2년 반 동안 가장 성취감을 느낀 건 뭡니까.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절반이거나 절반의 절반일 텐데 다 이뤄졌다고 말하기는 뭣합니다만 극적인 순간들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 세계가 지금 기후변화 문제로 고심하는데 2007년 12월 발리에서 기후변화협약 회의가 열렸어요. 그런데 그 회의가 일단 결렬된 것을 되살려 발리 로드맵을 만들어냈습니다. 거기서 기후변화 협상의 발판이 만들어져 올 12월의 중요한 코펜하겐 회의를 맞게 된 거죠.
-결렬 직전의 발리 회의를 반전시켜 발리 로드맵을 성사시킨 건 반 총장의 큰 업적으로 기록될 것인데 회의 분위기를 어떻게 돌렸는지 좀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2007년 12월 15일이었어요. 오전에 열린 기후변화협약 13차 당사국 총회장 분위기는 어수선했습니다. 폐막 시한인 14일을 넘긴 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회의장에서 각국 대표단은 언성을 높여 가며 자국의 입장만 강조하고 있었어요. 나는 나흘 전인 11일 회의에 참석한 뒤 다른 일정 때문에 발리를 떠나 있다가 15일 오전 10시 발리 회의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동티모르를 거쳐 일본으로 갈 일정이었지만 발리 회의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보고를 받고 발리로 돌아간 거죠. 나는 곧바로 협상을 시작했어요. 협약 초안은 물론이고 의장의 중재안도 거부하던 중국·인도 등 개도국 대표를 별도로 불러내 설득했습니다. 그런 뒤 대표단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회의장에 들어선 겁니다. 나는 “어느 나라도 모두를 얻을 수는 없고, 완전히 만족할 수도 없다”는 말로 합의를 위한 양보를 호소했어요. 오후 3시를 지나면서 각국 대표의 발언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오후 4시20분 마침내 ‘발리 로드맵’이 탄생했습니다.
- 발리 로드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2012년 유효기간이 끝나는 기존 교토의정서는 39개 선진국이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감축할 것을 선언한 것인데 발리 로드맵은 2013년 이후 미국과 개도국도 감축에 참여하기로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만 중국 등 개도국과 미국의 이해가 엇갈려 구체적인 감축 목표수치는 2009년 12월 코펜하겐 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유엔 안보리가 핵실험을 한 북한을 제재하는 결의안 1874호를 채택했습니다. 제재결의안의 이행 성적표는 어떻습니까.
제재위원회가 구성이 돼 구체적인 제재 대상이 결정된 것이 큰 진전입니다. 유엔 안보리에서 여러 나라에 대해 제재 결의를 했는데 제재 결의안 내용이 강도 면에서 아주 센 것입니다. 게다가 중국·러시아까지 동참을 했어요. 사실은 2006년 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했을 때 안보리 제재 결의를 했습니다. 제재 결의만 해놓고 제재위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죠. 그냥 명목상 제재를 한다고 해놓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재를 한다는 게 없다가 이번에는 제재에 관한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람과 기관과 같은 대상을 목록으로 만들었습니다. 터키대사를 위원장으로 제재위원회가 구성된 건 이전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지난번 북한 선박 강남호가 북한으로 회항한 것도 국제사회가 가한 집단 압력의 성과죠.
-중국이 결의안 문구를 약화시킨 건 아쉽지 않습니까.
중국도 내용 자체는 전적으로 지지했고 토의하는 과정에서도 별 이견이 없었습니다. 다만 문서로 제출했을 때 중국·러시아의 개별적인 이해관계가 있어 약간 톤다운한 건 사실이지만 내용 자체는 상당히 강한 겁니다.
-북한 문제에 직접 나설 여지는 없나요.
그런 가능성을 제가 당선될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죠. 그러나 그동안 6자회담이 진행되고 공동성명도 채택되고 비핵화 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 같았죠. 그런 과정에서 사무총장으로서 측면 역할을 해왔는데 지금 대화의 문이 전부 닫힌 상황에서 유엔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촉도 과거에 해왔고 지금도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복안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지난해 여름 삿포로에서 인터뷰할 때 한국의 세계화가 좀 미흡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신가요.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온 후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수준에는 아직 못미침니다. 국제 경제위기 해소, 기후변화 문제, 식량위기 등에서 한국이 보는 시야가 아직은 국내 지향적인 거 같고요.
-한국 의 위상은 어떻게 보십니까.
국제사회가 한국을 보는 잣대와 한국인이 스스로를 보는 잣대에 차이가 커요. 국제사회의 기대에 한국인이 잘 부응을 못하고 있다고 봐야죠.
-우리 스스로가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다, 실제보다 우리 스스로를 높이 보고 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스스로는 높은데, 실제로 잘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잘하고 있기도 합니다. 민주화라든지 경제사회 발전, 정보화에서 조선·자동차 등등 주요 산업에서 세계 10위에서 15위에 들어가 있는 반면에 한국이 내고 있는 공적개발원조(ODA) 같은 게 너무 적죠. 예를 들어 새천년개발목표(MDG·Millennium Development Goals) 달성을 위해 2015년까지 국제사회 목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민소득(GNI)의 0.7%인데 한국의 2015년 목표는 0.3~0.35% 정도니까 훨씬 부족한 거죠.
-한국의 젊은이들은 유엔본부나 산하기구에 진출하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합니까. 외국어만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닐 것 같은데.
그렇죠. 외국어도 잘해야 하지만 국제적인 시야도 넓히고 국제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정신이 돼 있어야죠. 한국 사람들은 유엔의 각 기구에서 열심히 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이 유엔에 지원하는 규모에 비하면 참여의 폭이 적지만 사실 돈을 많이 내는 나라일수록 기여에 비해 참여 폭은 적은 게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게 미국이나 일본이죠. 돈 내는 거에 비하면 유엔기구에서 일하는 사람 숫자가 턱없이 적죠. 그에 비하면 한국은 그렇게 적은 건 아니라고 봐야죠. 참여율로 보면 한국은 지금 11위죠. 제가 사무총장이 된 이후 고위직에도 꽤 많이 진출했습니다.
-뉴욕에 오는 한국의 지도급 인사들이 너도나도 반 총장 만나 사진 찍으려는 사례가 좀 지나치다고 들었습니다.
초기에 좀 그런 사례가 많았지만 내가 좀 엄격하게 제한을 했습니다. 나는 세계 각국의 외무장관급 이상 정상까지 와서 접견하기도 상당히 바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유엔에 특별한 이슈 없이 오신 분은 접견을 사양할 수밖에 없어요. 불가피하게 제가 만나야 할 개인적인 친분관계는 관저에서 주말을 활용해 만나 가급적 공적인 것과 분리하느라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한국 언론과 인터뷰도 김영희 대기자와 두 번 하고 연합뉴스와 한 번 한 것이 전부입니다. 방송 특집도 사양했어요. 가급적 한국적인 것에 영향을 받거나 신경을 쓰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민감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서양 언론들이 반 총장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많이 싣고 있는데 왜 그런 것 같습니까.
유엔의 최고위 공직자에 대한 기대도 있고 비판도 있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건설적인 비판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습니다. 192개 회원국의 기대와 입장이 다 다르고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이 달라요. 언론도 여기 출입하는 기자만 300~400명이 될 텐데 그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 다 다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약간이라도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하면 비판적인 기사가 나오죠. 나는 그런 것에 너무 구애를 받기보다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앞으로 잘 해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엔은 수직적인 조직이 아니라는 걸 간과하고 있어요. 유엔 사무총장이 회원국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 없죠. 여긴 수평적인 조직이어서 부단히 협상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192개국 하고 협상해서 합의가 나오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좌절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나 좌절만 있는 건 아닙니다. 지난 4월 런던 G20 정상회의에서 국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1조 달러를 모금하자고 제안했어요. 어마어마한 액수지만 1조1000억 달러를 모금했어요. 지난해 도야코 G8 정상회의에서는 말라리아 문제를 호소해 10억 달러를 모았습니다. 10억 달러면 10달러짜리 모기장 1억 개를 만들어 5억 명의 어린이를 구할 수 있다고 호소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바쁘신 중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중앙일보/2009년 8월 8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