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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인남식(국립외교원 교수) / 21세기 최대 비극의 현장 가자, 그 역사적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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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조회 10회 작성일2025-07-11 16: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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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제곱킬로미터 면적의 공간 안에 230만 주민이 거주하는 가자지구는 21세기 최대 비극의 현장이다.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발단이었다. 당시 1200명의 이스라엘 국민과 외국인이 하마스에게 피살당하고 251명이 인질로 억류됐다. 미증유의 보복에 나선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궤멸시킨다는 명분으로 643일째 가자를 공격하고 있다. 5만7000명의 팔레스타인 가자 주민들이 생명을 잃었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어린이 사망자만 1만5000명을 상회한다. 가자지구 건물의 70%가 완파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무엇보다 상하수도 및 정수시설도 대부분 망가져 전염병 우려가 짙다. 학교 시설은 65%가, 병원은 절반 이상이 손상되어 사회 유지를 위한 기본 기능도 붕괴된 상태다. 국제사회는 가자 사태가 회복 불능의 인도주의적 위기로 치닫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으나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와 하마스간의 휴전은 아직 불확실하다.

네타냐후 정부와 하마스간 휴전 불확실

가자의 비극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7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이 땅은 농경지 중심의 소규모 아랍 마을들이 산개한 지역이었다. 1917년부터 시작된 영국의 위임 통치기에는 대략 8만명 내외의 주민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자신들의 고향 마을을 떠난 20만명 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평화롭던 농경지가 난민 밀집 지역으로 바뀌었다. 유대국가 이스라엘 밑에 살기를 거부하고 집을 떠난 이들에게는 그나마 가까이에 이집트 관할 지역 가자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들이 두고 온 고향은 곧 이스라엘 도시로 변모했다.

가자지구 북쪽 10킬로미터 마즈달이 전형적인 예다. 그곳에 터잡고 살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밖으로 내몰리자, 이스라엘은 그 땅을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해 들어온 유대인들 (미즈라히)의 임시 수용소로 삼았다. 곧 마즈달은 유대인 이민 수용소를 넘어서서 아쉬켈론이라는 이름의 유대인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지중해변 야파 (욥바), 네게브 사막의 브엘셰바 등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고토를 떠나 가자로 몰려든 난민들은 졸지에 실향민이 되었다.

이스라엘을 피해 가자로 몰려들었던 이들에게 두 번째 얄궂은 운명이 닥친다. 1956년 수에즈 전쟁이라 불리는 2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가자 마저 점령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싫어 고향을 떠났는데 또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하는 비극을 경험했다. 비록 4개월간의 짧은 피점령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땅을 빼앗은 이스라엘 군을 마주했던 가자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이집트의 통제하에 있던 가자지구를 1967년 6일전쟁 (제3차 중동전쟁)으로 또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당시 이스라엘군 남부사령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은 이른바 ‘다섯손가락 전략’을 통해 가자지구를 5개 지역으로 나누어 통제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1948년과 1956년의 쓰디쓴 경험에 이어 이제 다시 이스라엘에 의해 지배당하는 운명에 마주했다. 시온주의자들이 가자지구 안쪽까지 밀고 들어왔다. 자기들의 마을을 만들었다. 정착촌이었다. 야훼께서 유대인들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을 쟁취하겠다는 시온주의자들의 신념은 정치를 넘어섰다. 충돌은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냉전이 무너지면서 그나마 한줌의 희망이 생겨났다. 1993년과 1995년의 오슬로 협정에 의해 ‘두 국가 해법’이 제시되자 가자 주민들도 언젠가는 자기 나라를 갖게될 것과, 혹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의 주역 라빈 총리의 피살 이후 보수파 네타냐후 총리가 등장하면서 가자의 희망은 사그라졌다. 그리고 2001년 911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미국 네오콘들의 중동민주화 구상

이라크 전쟁이 수렁에 빠져들면서 당황한 당시 부시행정부의 네오콘들은 중동 민주화 구상을 선언했다. 이른바 ‘확대중동구상’ (The 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이다. 테러와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편만하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중동평화론’에 근거한 정책이었다. 중동 각국에 민주화 압박이 심해졌고, 여파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도 향했다. 주권국가로 독립하기 전이었음에도 팔레스타인은 2006년 총선을 실시했다. 미국의 민주화 압력을 무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과는 의외였다. 미국, 이스라엘과 가까운 집권 정파 파타(Fatah) 대신 이스라엘 소멸을 주장하는 하마스가 132석 중 74석을 얻어 압승했다. 결과가 마뜩치 않았던 미국과 이스라엘은 선거 무효를 선언했다. 총리직에 오른 하마스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당한 정치과정을 통해 집권했다고 믿는 하마스는 결국 총을 들고 격렬히 저항했다. 이스라엘의 무력에 밀린 하마스는 가자지구로 들어가 똬리를 틀었다. 2007년부터 가자지구가 하마스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배경이다.

이후 끊임없는 이스라엘과 국지 교전을 이어왔고, 결국 하마스는 10.7 이스라엘 도발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지옥도를 세계가 목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보복 응징 공격으로 인해 가자주민들은 마치 피구 경기장 안의 선수들처럼 이리저리 폭격을 피하며 옮겨 다니는 중이다.

가자의 역사를 짚어보면 현지 주민들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기 땅을 빼앗기고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던 차에, 그나마 이주해 사는 땅도 이스라엘에 의해 두 번이나 다시 점령당한 아픔을 경험하는 중이다. 가자는 지금도 삼중의 고난을 겪고 있다. 첫 번째는 적대국이 시온주의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가자를 봉쇄하며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총리와 전직 국방장관은 반인도주의적 범죄 및 전쟁범죄 (고의적 기아 유발)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가자는 지금까지 계속 공격받고 있다. 말 그대로 초토화되는 중이다. 이스라엘 보수 연정에 속한 극우파 각료들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차제에 이스라엘 영토로 못박아 두자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두 번째는 자신의 지도자를 잘못 만났다는 점이다. 가자를 장악한 하마스의 폭력 투쟁 노선으로 인해 주민들은 늘 이스라엘의 보복에 시달리고 있다. 하마스가 18년전 강제로 권력을 찬탈당했다는 억울함을 아무리 애써 이해한다고 해도, 자기 백성을 볼모로 하는 폭력 투쟁은 용납될 수 없다. 가자의 통치세력을 자임한다면 정강정책을 바꾸고 이스라엘과 적대적이나마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가자 주민들도 살고, 하마스도 산다.

지금도 삼중의 고난을 겪고 있는 가자

세 번째는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이다.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하고, 비극적 파괴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국제사회는 실효적 개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랍 형제국들의 반응이 뜨뜻 미지근하다. 이집트는 튀르키예등에서 오는 가자 구호선단의 접안을 막는다. 사우디 등 걸프 왕국의 팔레스타인 지원도 여타 유럽과 아시아에 비해 결코 적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수교 즉 아브라함 협정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

고약한 상대를 만났고, 지도자 복도 없고, 형제국도 나몰라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가자지구 주민의 삶이 딱하다. 녹록지 않은 환경속에서 지금도 가자주민들은 쏟아지는 폭격을 피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중이다.

세 번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하고, 지금도 폭격에 노출된 가자의 비극은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붕괴하고, 나라와 나라가 고립주의로 서로 격벽을 쌓는 정글같은 세상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속한 휴전 타결 소식을 기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전략지역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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