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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마유미' 극비호송..그 숨막혔던 드라마/박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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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조회 3,653회 작성일2012-02-24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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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마유미\' 극비호송..그 숨막혔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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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대한항공 858여객기 폭파 혐의를 받고 있는 하치야 마유미 양이 당국에 체포되어 KAL 특별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 수사관들과 함께 경찰 앰뷸런스로 향하고 있다. 1987.12.15 (본사자료)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박수길 前유엔대사 회고..靑 "13일까지 국내로" 특명
바레인 막판 결정번복..우방 동원해 \'전방위 외교\'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정묘정 기자 = 13대 대선을 하루 앞둔 1987년 12월15일 오후 2시 김포공항.

20대 중반의 김현희(일본 가명 하치야 마유미)가 흰색 마스크를 쓰고 호송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모습은 지금도 국민의 뇌리 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장면이다.

바레인에서 체포된 지 2주일만에 이뤄진 KAL기 폭파용의자 김현희의 국내 신병인도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결정적 계기였다. 대선을 불과 하루 앞둔 호송시점이 정치적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기는 했으나 당시로써는 용의자의 신병확보 없이 사건의 배후와 실체를 규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언뜻 보기에는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보이는 김현희의 신병인도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숨 막히는 외교전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신병인도에 소극적이었던 바레인 정부를 상대로 가히 전방위적 외교를 동원해 일궈낸 \'작품\'이었다는 평가다.

바레인 경찰이 현지 공항에서 김현희를 생포한 것은 폭파사건 이틀 후인 12월1일이었다. 11월29일 바그다드에서 대한항공(KAL) 858기에 탑승한 김승일과 김현희는 기내에 시한장치를 한 \'라디오 폭탄\'을 두고 아부다비에서 내린 뒤 곧바로 바레인으로 도주해 은신했다. 이어 일본 위조여권을 이용해 로마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으로 달아나려다 현지공항 검색대에서 경찰에 적발된 것이다.

김승일은 체포 직전 독약이 든 앰풀을 깨물어 자살했고 바로 옆의 김현희도 담배에 든 앰풀을 깨물려고 시도하다가 경찰의 제지로 실패했다. 당시 사건의 배후와 실체를 수사하던 안기부로서는 김현희의 신병확보가 사활적 관건이었다. 결국 김현희를 바레인으로부터 호송해오는 \'교섭\'의 책임이 외무부(현 외교통상부)로 넘어왔다.

◆ "12월13일까지 김현희를 압송하라" =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한 지 8일이 지난 12월7일, 바레인 출국길에 오른 박수길 외무부 1차관보의 어깨에는 무거운 짐이 놓여 있었다. 앞으로 일주일 후인 12월13일까지 김현희의 신병을 국내로 인도해오라는 청와대의 \'특명\'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참사의 충격에 휩싸였던 당시 국내 여론도 하루빨리 김현희를 국내로 끌고 오라는 쪽으로 모여 있었다.

그러나 박 차관보로서는 당시 바레인 당국이 순순히 신병을 인도해줄지 의문이었다. 바레인이 한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한 국가가 아닐뿐더러 김현희가 일본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있던 터라 오히려 일본측에 신병이 인도될 가능성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시리아 등 친북(親北) 사회주의 아랍국가들은 관영언론을 통해 "김현희는 가짜다"라는 뉴스를 양산하며 바레인 당국을 압박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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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길 유엔협회세계연맹 회장
(서울=연합뉴스) 정묘정 기자 = 박수길 유엔협회세계연맹(WFUNA) 회장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87년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 당시의 \'김현희 극비호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1.8.28myo@yna.co.kr

박 차관보는 일단 바레인 공항에 도착한 직후 아이언 핸더슨 CID(형사국) 국장의 도움으로 현지 경찰에 구금된 김현희를 면회했다. 박 차관보가 "한국 사람이지, 너", "일본 사람 아니지"라고 묻자 김현희는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만 숙였다는 후문이다.

바레인 도착 다음날인 12월8일 박 차관보는 먼저 외무장관을 찾아 바레인 정부의 기류를 살폈다. 정부가 바레인 측에 신병인도를 요청할 수 있는 공식 근거는 \'헤이그 협약\'(항공기 불법탈취 방지에 관한 조약)이었다. 하이재킹당한 항공기의 등록국 등이 재판권을 행사하며,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한 국가는 관할국에 신병을 인도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박 차관보는 이 같은 법률적 접근에 더해 보다 현실적 이유를 내세워 바레인 정부를 설득했다. 바레인이 테러리스트 김현희를 계속 데리고 있는 것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논리였다. 특히 북한측이 특공대를 보내 또 다른 테러를 자행할지 모른다며 강하게 압박했다.

◆ 바레인 "北 소행 분명한 증거가 없다" = 예상대로 바레인 측은 흔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이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신병인도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바레인 외무장관은 박 차관보에게 "원칙적으로 김현희를 보내주도록 적극 협조하겠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으면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박 차관보는 동행한 안기부 직원들과 함께 대책을 숙의했고 그 결과 \'결정적 증거\'를 찾아냈다. 바로 독약 앰풀이었다. 김현희가 자살기도에 사용했던 독약앰풀이 과거 서울에서 체포된 간첩이 썼던 것과 같은 종류라는 점을 입증하는 자료를 확보한 것이다. 두 케이스에 동일하게 등장하는 문제의 독약은 사이나이다 종(種)으로 북한 외에는 생산하는 국가가 없었다.

박 차관보는 이튿날인 9일 다시 외무장관을 만나 증거자료를 제시하면서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빨리 송환하라"고 설득했다. 외무장관에 이어 다음 교섭대상은 현지 경찰을 관할하고 있는 모하마드 칼리파 내무장관이었다. 박 차관보는 "증거가 다 나왔다"면서 구체적인 신병인도 절차에 착수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바레인 측도 북한의 소행임을 인정하는 눈치였으나 그다지 서두르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러자 박 차관보는 12월13일이 \'시한\'이라는 점을 밝히며 바레인 정부의 조기 결단을 압박했다. 박 차관보는 칼리파 내무장관에게 "13일까지 돌아오라는 게 본부의 훈령"이라면서 "선거 등으로 일정이 바빠 13일까지 김현희를 내주지 않으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한국 정부는 물론 바레인 정부도 어려워지니까 화약고를 빨리 털어버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박 차관보의 외교적 노력은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제임스 릴리의 비망록인 \'차이나 핸즈(China Hands)\'에도 잘 소개돼 있다. 비망록에는 "박 차관보는 바레인 측에 테러용의자를 오랫동안 데리고 있으면 그만큼 북한이 그녀를 구출하려는 공작을 펼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바레인 사람들이 살해될 우려가 있다고 설득했다"고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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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찌야 마유미와 하찌야 신이찌의 여권
KAL 858기 폭파혐의를 받고있는 하치야 마유미의 여권(상) 86.8.2~8.20일간 마카오 출입 기록이 명시돼 있다. 하치야 신이치의 여권(하) 84.9.21~9.26까지 서울출입기록과 87.11.29일 바레인 입국기록이 명시돼 있다.//1987.12.15(=서울 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4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대한항공 호송특별기 유럽行으로 위장" = 이에 부담을 느낀 바레인 정부는 결국 김현희의 신병을 인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칼리파 내무장관은 "각의에서 결정해 국왕에게 보고해서 돌려보내주겠다"면서 "절차를 밟아야 하는 만큼 14일쯤 신병을 인도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양국은 철통보안 속에서 신병인도 실무협상을 벌였다. 수차례 교섭 끝에 양측은 대한항공 특별기가 14일(현지시각) 저녁 7시 도착해 1시간 동안 급유한 뒤 김현희를 싣고 한국으로 떠난다는 계획에 합의했다. 박 차관보는 즉각 본부에 보고했고 정부는 곧바로 대한항공의 협조를 얻어 특별기를 출동 대기시켰다.

문제는 \'안전\'이었다. 대한항공이 공개적으로 바레인행 특별기를 띄울 경우 북한의 테러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양측은 항공기와 공항 관제탑간 교신을 교묘하게 조작하는 작전을 세웠다. 유럽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바레인 상공을 이동하던 중 갑자기 생명이 위독한 환자가 생겨 긴급히 바레인 공항에 비상 착륙하는 것으로 가장하기로 한 것이다. 쉽게 말해 \'페인트 모션\'을 쓰기로 한 셈이다. 사전계획 유출을 우려해 심지어 바레인 공항당국에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이제 실행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 바레인 막판결정 번복..우여곡절의 연속 = 그러나 막판에 상황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호송을 하루 앞둔 13일 저녁 외무장관이 갑자기 전화하더니 "이유를 밝힐 수는 없으나 내일 보내지 못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한마디로 낭패였다.

난감해진 박 차관보는 직접 만나자고 요청했고 외무장관은 한동안 이를 피하다가 결국 면담에 응했다. 외무장관에 따르면 바레인 정부가 이날 총리 주재로 각의를 열어 김현희 신병인도를 최종 결정하려고 했는데, 교육부 장관이 느닷없이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만큼 신중히 대처하자고 문제를 제기해 결정이 유보됐다는 것이다. 바레인 각의는 만장일치로 의결을 하도록 돼 있다.

이에 박 차관보는 "난 무조건 14일 떠난다. 잘 판단해라. 온 세상이 다 주목하고 있는데, 당신들도 진실을 찾는데 협조해야 한다"고 최후통첩했다. 국제사회의 전반적인 여론도 한국 편이었고 대(對) 바레인 설득에 미국을 비롯한 우방들도 측면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바레인 총리는 결국 국왕을 찾아가 "모두 김현희 신병인도에 동의하는데, 교육부 장관만이 반대하고 있다"며 상황을 설명하자 국왕은 "(한국으로) 돌려 보내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문제가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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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법정 향하는 김현희
(서울=연합뉴스) 89년 4월 선고공판을 받기위해 대법정으로 향하는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 연합뉴스 DB 2009.3.11

양국은 당초 계획을 24시간 연장해 실행에 옮겼다. 대한항공 특별기는 15일 오후 7시 도착했고 1시간 동안 급유를 받은 동안 김현희를 태웠다. 당시 특별기에는 안기부에서 급파된 남녀 요원과 외교관 두명이 동승했다. 안기부 요원들은 김현희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만일의 자살 가능성데 대비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박 차관보는 "서울까지 9시간 걸리는데, 재갈을 물릴 필요가 있느냐"고 하자 요원들은 "안된다. 혀를 깨물어 자살할 수 있다"고 손사래를 쳤다.

김현희를 태운 비행기는 한국 시각으로 15일 오후 2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8일간에 걸친 \'마유미 호송작전\'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박 차관보는 언론 노출을 우려해 특별기가 떠난 다음날인 16일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이용해 귀국했다.

◆ 北 "남한의 자작극"..최광수 외무 \'니체\' 인용 = KAL기 폭파사건을 둘러싼 외교전의 본무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였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의 비토권 행사 가능성으로 안보리 회부의 실익이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국제적 테러만행을 규탄해야 한다는 국내외의 여론에 따라 정부는 결국 안보리행을 택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바로 김현희 신병 인도 교섭을 맡았던 박 차관보였다.

당시 미국도 안보리 회부에 찬성했다. 버논 A 월터스 주유엔 미국대사는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국제적 테러행위에 대해 안보리가 북한을 강력히 규탄(Condemn)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안보리 회부의 주된 목적은 당시 북한과 수교한 국가들로 하여금 국교단절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1988년 1월16∼17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는 북한에 대한 일방적 성토의 장이었다. 북한은 이 자리에서 "이번 사건은 날조된 것"이라고 강변했으나 전혀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

당시 박길연 주유엔 북한 대사는 "소위 박수길 차관보라는 자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검은 보석과 200만 달러의 돈을 받아 자작극의 주인공인 한국 기생 출신을 잡아와서 우리의 테러리스트라고 한다", "2차대전 이후의 비행기 추락은 모두 미국이 꾸민 것"이라는 요지로 2시간을 발언했다.

이에 우리 정부를 대표하는 최광수 외무장관은 박 차관보의 조언을 받아들여 독일 철학자 니체의 저서『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를 인용, 북한 측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바로 "악마와 싸우기 위해서는 너 스스로 그 과정에서 악마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Be careful when you fight the monsters, lest you become one)는 것이었다. 북한처럼 온갖 거짓말을 쏟아내는 악마를 상대로 한국이 똑같이 대응하면 그 과정에서 악마로 전락한다는 뜻이었다. 안보리에 참석한 국가들은 우리 측의 이 같은 발언을 아주 인상깊게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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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시정전위에서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 기자회견 비디오 보여주는 유엔측
23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 제441차 본회의에서 유엔측은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의 기자회견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북측에게 보여주었다.//1988.2.24(본사자료)(서울=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5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우리 측의 발언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유엔 바레인 대사가 일어나 "북한이 어떻게 박 차관보에게 인격적인 모독을 가하고 비상식적인 언동을 하느냐"고 북한을 몰아세웠다.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자 북한의 우군이었던 중국과 러시아 역시 북한을 편들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당시 주유엔 중국대사는 곤혹스러운 표정 속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국제 테러리즘과 싸워야 한다"는 내용의 짤막한 발언을 내놨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의장성명이나 결의안까지 이끌어내지 못했으나 유엔 안보리 무대에서 북한을 일제히 규탄하는 컨센서스를 이끌어낸 것은 당시로는 분명한 외교적 성과였다는 평가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도미니카를 비롯한 카리브해 연안 2∼3개국이 북한과 단교를 하기도 했다.

당시 외무차관보로서 김현희의 신병인도 교섭을 직접 벌이고 안보리 무대에서 대북 규탄을 이끌어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박수길 유엔협회세계연맹 회장은 일각에서 김현희 호송시점을 놓고 여전히 의혹의 시선을 제기하는 데 대해 답답해하는 표정이다.

김현희를 조속히 데려오라는 청와대 특명과 국내 여론에 따라 외교적 교섭에 전력투구했을 뿐이며 어떤 형태의 정치적 고려도 없었다는 것이다. 박 대사는 "일부 단체들이 당시 특별기가 일찍 출발했음에도 제주도나 싱가포르에서 기다리다가 선거 하루 전날에 맞춰서 왔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이것은 역사의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 박수길 유엔협회세계연맹(WFUNA) 회장 = 1961년 외교부에 입부한 이후 주유엔대표부 참사관, 주제네바 대사, 주유엔대표부 대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다자외교통(通)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조약과장과 조약국장을 지내 국제법에도 능통하며, 동북아 1과장과 주미국대사관 공사, 주모로코 대사, 주캐나다 대사 등을 거치며 전방위적인 외교 경험을 쌓았다.

특히 제1차관보로 재직 중이던 지난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이 발생하자 직접 바레인으로 날아가 폭파 용의자 김현희를 서울로 데려오기 위한 바레인 정부와의 교섭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퇴임 후에도 고려대와 서울대, 경희대 등에서 강단에 서는 한편 유엔 인권위원회 인권보호증진소위원회 위원, 유엔한국협회 회장, 유엔중앙긴급대응기금 유엔사무총장 자문위원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지난 2009년에는 전세계 109개국 유엔협회로 구성된 WFUNA 회장으로 추대돼 반기문 사무총장이 이끄는 유엔과의 협력에 앞장서고 있다.

▲경북 경산(78) ▲고려대 법학과 ▲美 컬럼비아대 국제대학원 석사 ▲조약과장 ▲동북아1과장 ▲주유엔대표부 참사관 ▲조약국장 ▲주미 대사관 공사 ▲주모로코 대사 ▲제1차관보 ▲주캐나다 대사 ▲주제네바 대사 ▲외교안보연구원장 ▲주유엔대표부 대사 ▲유엔 안보리이사회 의장 ▲유엔한국협회 회장 ▲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유엔협회세계연맹 회장


저작권자(c)연합뉴스 2011/08/29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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