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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계, 2003년과 지금/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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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조회 951회 작성일2011-05-10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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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상으로는 5년도 채 안 되는데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2003년은 개인적으로나 한·미 관계로 보아 대단히 힘들었던 특별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수많은 큰 현안들이 터져 나왔지만 가장 긴박한 문제는 역시 북핵 문제였다.

부시 행정부의 신보수주의자들은 국제관계를 선악(善惡)의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세계로 확산시켜야 할 사명이 있고 필요시 군사력도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이러한 강한 이념적 성향 때문에 약속을 어긴 나쁜 북한과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도 이념이 주도하던 때였다. 감성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자주이념이 전면에 표방되었고 이러한 이념에 따른 정책들이 초래할 현실적 결과와 국익에 미칠 영향은 냉철하게 검증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념에 국익이 가려지는 경향은 미국에서도 비슷했다.

미국의 이념과 한국의 이념이 부딪치니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실무 외교라인은 사면초가 상황이었다. 안으로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이 한·미 동맹의 약화를 가져오면 우리의 장래 국익에 반한다고 설득하는, 외교 아닌 내교(內交)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은 그것이 장관직을 떠나게 된 근본 원인이 되었다.

밖으로는 미국을 향해, 양국이 공동 보조를 취하며 동맹도 살리고 핵문제도 해결하는 방법은 우선 모든 외교수단을 소진해 북한과 협상하고 그래도 북이 응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에서 좀 더 강한 압박을 가하는 것이라고 설득하기 위해 진력했다. 그래야 북한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취할 다음 조치에 명분이 실리기 때문이었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면서도 핵무기 감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했던 레이건 행정부의 실용적 자세를 거론하기도 했었다.

1차 6자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그러한 생각을 반영한 3단계 로드맵을 만들고 2차 회담을 위해서는 북핵 동결과 상응조치 연계안을 만들어 이것을 미국 측에 설득하고 이를 위해 미리 일본과도 협의했다. 그때만 해도 한·미·일 간의 협력 메커니즘(TCOG)은 살아있었고 6자회담에 우리 입장을 반영하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그런 가운데 9월에는 파월 장관과의 뉴욕 회담이 있었다. 원래 나는 우리 정부가 이라크 파병과 북핵 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했었다. 무엇보다 당시 이념지향성이 매우 강한 미국 행정부의 성격상 역효과를 초래할 공산이 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부의 결정이 있었기에 지시에 따라 회담을 했다. 파월 장관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외교관이었지만 이러한 연계에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클린턴 정부의 협상 결과를 감안해 대화를 통해 다룰 것임을 2001년 3월 스스로 언급한 적도 있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은 회담의 내용이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언론에 누출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아직도 미국 측 해명을 듣지 못했다. 파월 장관에게 선물한 책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절박한 심정의 발로였으나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양국 모두 많이 변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학습효과도 컸던 것 같다. 미국은 2006년 중간선거 패배, 이라크의 혼미, 북핵 실험, 신보수주의자들의 퇴진 등을 계기로 대북정책을 바꿨다.
2007년 1월 부시 대통령은 본격적인 북·미 양자회담을 처음으로 허락했고 그 결과 2·13 합의가 가능했다. 이는 6자회담 국가 모두를 위해 잘된 일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러한 변화가 몇 년만 앞섰더라면 하는 점이었다.

한국 정부도 많이 변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대미 북핵정책 조율 과정에서 현실감각과 유연성이 증대되었다. 아쉬운 것은 북한 핵실험 이전에 좀 더 빨리 그런 변화가 왔었고 북에 대해 좀 더 냉철했더라면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이끌어낸 것은 중요한 성과였다.

미국과 같은 대국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이라도 미국 내에 우리의 관점을 대변해줄 유권자나 이익집단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이 긴요하다. 이스라엘이나 대만의 로비 네트워크처럼 말이다. 동맹을 유지하며 공동의 가치와 이익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우리 나름의 전략과 논리를 개발해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중앙일보 칼럼/2008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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