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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정책을 업그레이드해야/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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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조회 1,062회 작성일2011-05-10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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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에선 배고파 못 살겠고, 중국에서는 두려워 못 살겠더니 한국에선 몰라서 못 살겠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1만3000여 새터민(탈북 주민)들의 형편이다. 이들은 모든 것을 국가 지시대로 따라서 하기만 하면 됐던 세상에서 벗어나 이제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알아서 해야 되는 자유시장 경쟁체제에서 살게 됐다. 마치 게임의 규칙을 모른 채 경기장에 내몰려진 선수처럼 외롭게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한국 사회에 다른 사회적 약자도 많은데 왜 이들에게만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또 지원을 기대하지 말고 현장에서 스스로 알아서 생존법칙을 익혀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적자생존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새터민들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들은 애당초 게임의 규칙 그 자체를 습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새터민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인 기회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 또한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새로운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도록 돕는 일은,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큰 변화에 미리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에서도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정착금 지원과 관련해 새터민 스스로의 자활의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꾼 것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새터민들의 숫자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하다 보니 변화하는 현실을 정부 정책이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새터민 문제는 크게 보아 취업 지원, 청소년 교육, 심리적 적응 문제가 있다. 취업의 경우, 2006년 초 이후 입국한 새터민들의 취업률이 24%밖에 안 되는 것으로 최근 보도됐다. 이들은 어렵게 취업해도 새로운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주 그만둔다. 시장경제 체제에 아직 익숙해 있지 못하고 자신들의 희망 직종에 대한 기대치가 객관적인 능력보다 높기 때문이다. 고용주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노동생산성이 낮은 새터민 노동자들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에서 살아온 그들이 부닥치는 문제점들을 정밀하게 분석해 반영해나가면서 정부 차원의 보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직업훈련과 적응훈련 시스템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민간 단체들의 역량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이 하나원에서 하는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의 2개월 소양교육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나원 시설도 증축 수준이 아니라 앞을 멀리 보고 대규모로 확장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 교육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는 초·중등 교육과정이 12년인데 북한은 10년제고 그나마 그곳에서의 교육 내용이 경제난 등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탈북 후 외지에서 3~4년씩 피해다니며 살다 보니 공부할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 올 1월 한반도평화연구원이 인수위에 전달한 ‘새터민 청소년 교육을 위한 정책 제안서’에 따르면 중·고등학교 교육 적령기의 새터민 청소년 취학률은 62%, 교육적령기를 넘긴 청소년 취학률은 10.4%에 불과하다. 그나마 취학 학생들의 중도 탈락률도 남한 학생의 10배에 달하고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공교육 부실이라는 이야기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나마 부실하다는 공교육 체제에마저도 흡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교육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많은 비인가 민간학교들이 그나마 취학하지 않은 학생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학력 인정 대안학교의 설치기준을 낮추어 이들 민간부문의 능력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심리적인 차원에서는 국민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원을 나와 취직 하려 애쓰던 한 새터민 중년 여인을 면담한 적이 있다. 그는 취업이 잘 안 되어 심한 우울증과 절망감에 빠져 있던 차에 우연히 만난 어느 백화점 점원으로부터 “한국에 잘 오셨습니다. 열심히 사세요”라는 친절한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을 내 일어섰다고 한다. 모든 국민이 이들을 품어 안을 수 있도록 정부와 교육기관, 그리고 언론 차원의 캠페인도 벌였으면 좋겠다.

사람의 일이나 국가의 일이나 한 가지 철칙이 있다. 그것은 뿌리는 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뿌려야 할 시기를 놓친 뒤에 고통받으며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는 새터민 정책을 업그레이드함으로써 미래를 위해 뿌려야 할 때다.


윤영관 서울대·국제정치학

중앙일보 칼럼/2008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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