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체면과 명분을 잃지 않는 가운데
고통스러운 현실을 실용주의적으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목표를
최종적으로 달성하려는, 중국인 특유의 강인하고 오묘한 전략이다.”
‘7대 3의 법칙’은 뛰어난 전략가였던 마오쩌둥(毛澤東)과 관련이 있다. 마오 자신이 이 법칙을 주도적으로 사용했고, 이후 지도자들과 전략가들이 이 법칙을 응용해 왔다. 그 사례들을 보자. 첫째, 마오는 중국의 공산혁명을 실현하려는 초기부터 농촌과 도시의 관계에서 ‘7대 3의 법칙’을 언급했다. 도시노동자가 주도하는 공산혁명을 권고한 소련의 방침을 거부하고, 중국은 농민이 다수이기 때문에 농촌 70%, 도시 30%의 비중으로 공산혁명을 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농촌을 혁명기지화하고 농민을 혁명의 주체세력으로 만들어서 도시를 포위하는 전략을 사용하여 성공했다. 혁명을 성취한 공(功)의 70%를 농민에게, 30%는 도시노동자와 군대에 돌렸다.
마오와 덩이 주고받은 공칠과삼(功七過三)
셋째,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후임자인 후루시초프는 1956년 소련 공산당대회에서 스탈린의 개인숭배사상을 비판하고 자본주의국가들과의 평화공존을 주장했다. 반면 마오는 스탈린의 이념적 공헌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보고, ‘스탈린은 공(功)과 과(過)가 7 대 3’ 이라고 평가했다. 마오는 후루시초프를 수정주의자라고, 후루시초프는 마오를 교조주의자라고 서로 비난했다. 마오가 이 방식으로 스탈린을 옹호한 것은 공산주의노선에 대한 후루시초프와의 차이를 견지하며 또한 중국의 주적인 미국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에 기인함이다.
넷째, 1976년 마오가 사망했을 때, 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마오가 문화대혁명 등의 극단적인 조치로 중국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은 1981년 당대회에서 ‘마오의 공과 과는 7대 3’이라고 공식선언하면서, 과거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고 미래를 보고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을 천명했다. 마오는 과거에 자신이 스탈린에 대해 했던 평가를 그대로 돌려받았던 것이다. 마오의 고향인 후난성 사오산(韶山)에 있는 그의 기념관에는 생애 주요활동에 대한 기록에서 문화대혁명 기간이 공백으로 처리되어 있다. 마오를 승계한 지도자들이 마오의 공과를 이렇게 회색 지대에 놓아 둔 것이다. 한편, 마오는 1973년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그간 좌천시켰던 덩의 복권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70퍼센트는 유익한 일을 해왔고 30퍼센트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덩샤오핑 동지는 지난날의 결점들은 점차 고쳐나가십시오.” 마오가 자신에 대해 부여했던 ‘7대 3의 법칙’을 덩이 마오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점이 흥미롭다.
명분 지키며 현실 수용하는 전략
마오는 시인이자 혁명가이며 군사전략가이자 사상가였다. 마오는 모든 사물을 변증법적으로 보았다. 그는 하나가 둘이 되고 대립 통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혼란과 불안정 속에서 기회를 찾았다. 대립되는 양면성은 평행으로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 통합하고 통일을 이루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것이 마오가 자주 인용하던 ‘이분법’이었다.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를 통해서 ‘신중국’을 설립한 것이다. 그의 변증법은 ‘7대 3의 법칙’과도 관련이 있으며, 중국의 지도자나 전략가들에 의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그러면 중국인이 갖고 있는 ‘7대 3의 법칙’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중국인은 비유와 개괄에 능하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어떤 상황을 고도로 개괄하는 능력과, 정곡을 찌르며 한마디로 표현하는 방법을 추앙한다. ‘7대 3의 법칙’도 중국인들의 사고가 고도로 형상화된 언어로 표출된 한 예일 것이다. ‘7대3 법칙’은 현대 중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상징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대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체면과 명분을 잃지 않는 가운데 고통스러운 현실을 실용주의적으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목표를 최종적으로 달성하려는, 중국인 특유의 강인하고 오묘한 전략이다.
중국인은 그 당시에 처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한 사람 또는 한 상황에 대해 명과 암을 일시적으로 함께 포용한다. 하지만 결코 7을 포기하지 않고 긴 시간(인내)을 들여 자신이 원하는 목표인 7을 달성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마오에 대한 평가에서는 3이라는 과보다는 7이라는 공을 헤아리는 것이고, 미·중간 전략적 경쟁에서 “향후 10년간 중·미가 70%는 경쟁하고 30%는 협력하겠다”는 것은 경쟁을 더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처신에 있어 겉과 속이 같은 상대를 3류로 취급하는 민족이다. 거대한 면적과 인구, 유구한 역사를 통해 단련 받느라 생존을 위한 나름의 자구책의 결과일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러한 특질을 충분히 고려하여 중국을 상정하고 중국의 정치와 외교를 접근해야 한다.
회색지대의 관용, 우리에게 있나
‘7대 3의 법칙’에서 우리가 참고할 것은 무엇일까. 이중 교수는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은 지난날의 마오쩌둥과 공산당의 과오를 호되게 비난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당성만은 철저하게 옹호한다. 반면에 어제는 항상 부당했고, 오늘은 언제나 정당하고, 내일은 다시 오늘이 부정되는 나라, 이어지는 단절과 파괴 속에서 정체성마저 위기에 놓여 있는 나라인 한국이 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 전부를 몸으로 사랑하는 것 같다. 불행했던 과거는 불행했던 대로 간수하고 재현시키며 역사의 교훈으로 삼는다.”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았던 2019년 한국 정부는 그간 한국의 독립에 기여했던 인사들을 거론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추천하고 이승만과 같은 해방 이후 한국의 독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은 홀대했다. 이러한 극단적이고 흑백논리에 갇힌 방식은 한국에 전혀 이롭지 않고 또 다른 분열을 조장한다. 온 국민의 국익이 걸린 건강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 방해될 뿐이다. 하루빨리 정부가 균형을 잡고 필요하다면 현재와 미래를 위해 판단을 회색지대에 유보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조언한다. 우리 지도자들에게도 이러한 회색지대의 관용과 전략을 실천할 지혜와 용기가 있는가.
연상모 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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