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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섭 / 나의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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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11-19 17:21 조회1,0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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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호천사

  

서현섭 전 교황청 대사

 

 

최근 헌책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빛바랜 우편엽서에 눈시울을 적셨다. 엽서 하단에 ‘3-24-67’이라고 적혀있다. 아, 반세기전의 엽서가 아닌가.

 

보내는 사람: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대한결핵협회 서울지부 진료소 심미택

받는 사람: 일병 서현섭 군우 151-103 제7169부대 의무중대

 

1967년 군복무 시절에 대한결핵협회에 근무하는 간호사로부터 받은 엽서이다.

 

암담하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대학 1학년 1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 교의실의 호출을 받고 들렸더니 지난번 건강검진 결과 결핵 중증으로 판명되었다고 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감염되면 안 되니 우선 휴학하고 치료에 전념하라고 했다. 고맙게도 대한결핵협회를 소개해주었다.

아쉽지만 그 날로 휴학을 하고 교문을 뒤로 했다. 20대 중반에 홀로 된 모친이 험한 일을 하며 누이동생과 나를 키워왔던 터라 애당초 나의 대학진학은 무리였다. 결핵으로 학교를 그만 둬 더 이상 모친을 고생시키지 않아도 되어 차라리 잘되었다고 자위하면서 자신을 다독거렸다.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다음에 회현동에 있는 대한결핵협회 서울지부 진료소 문을 두드렸다. 나와 같은 결핵환자가 많은데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간호사는 단발머리 차림에 안경 속의 눈이 차가운 인상이었으나 의외로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했다. 결핵은 결코 불치의 병이 아니고 꾸준히 약만 복용하면 완치될 수 있다고 하면서 위로해주었다.

그 후 초기 치료에 사용되는 1차 약 나이드라지드와 파스를 하루에 3번, 한 움큼씩 먹어야 했고 6개월 동안은 주 3회 협회를 방문하여 스트렙토마이신 주사를 맞았다. 간호사는 갈 때마다 설교를 했다. 초기 진료에 실패하여 결핵균이 1차 약에 내성이 생겼을 때는 2차 약을 사용해야 하나 2차 약은 치료 효과가 떨어지고 부작용이 많고 또한 가격이 비싸다고 엄포를 놓았다. 나는 시키는 대로 약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삼켰다. 일주일에 3번, 엉덩이에 주사를 맞는 데이트(?)로 우리는 많이 친해져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남편과는 이혼하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이야기조차 들을 수 있었다. 가끔은 이혼녀를 꿈속에서 보기도 했지만 그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나는 협회에 들려 마이신 주사를 맞은 다음 바로 남산 중턱의 소나무 숲 속, ‘남산 요양소’라고 이름 붙인 그 곳에서 누워 하늘을 우러러보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요양생활을 계속했다. 가끔은 앉아서 혼자 훌쩍거렸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육체노동으로 힘들게 번 돈으로 사내인 나는 약을 사먹고 영양 보충한답시고 가끔 치킨라이스를 혼자 먹어 치웠다. 남산요양소에서 짝수 날에는 영어 단편소설을 암기하고, 홀수 날에는 독일어 단편소설을 암기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포자기 심정으로 자살의 충동에 빠질까 봐 두려웠다.

그 때 암기한 독일 작가 쉬트롬의 『호반』(Immensee)을 지금도 약간은 외우고 있다. 남산의 요양생활을 착실하게 1년 계속하자 의사선생님이 놀랄 정도로 상태가 많이 좋아져 주사를 더 맞지 않아도 되었다. 약을 2년 정도 더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어느 날 병사들을 가득 태운 군용 트럭 수십 대가 쏜살같이 남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월남에 파병되는 병사들이라고 했다. 나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단조롭고 지루한 남산요양소 생활을 이제 그만 접고 월남전에 참전하기로 작심했다. 간호사한테는 당분간 지리산에 있는 절에 가서 요양하겠다고 얼버무리고 하직인사를 했다.

1966년 9월, 전남 광주에 있는 31사단 신병 훈련소에 입소했다. 부친이 전사한데다 독자, 그리고 결핵 치료 중이라 징집 면제에 해당하지만 나는 기를 쓰고 입대했다. 그 때는 자살할 용기는 없고 차라리 월남에 가서 전사해도 그만이라는 자포자기 심정이었다. 신병 6주간 교육을 가까스로 마치고 대구 육군 군의학교에서 의무병 교육을 3개월 쯤 받고 의무중대에 배속되었다. 신병생활 내내 제식 훈련, 사격, 구보를 제대로 못해 군대에서 흔히 농조로 지칭하는 얼간이, ‘고문관’으로 불렸다.

부대 배치를 받은 후 그간의 사정을 간호사한테 이실직고했다. 그녀는 나의 행동을 철없는 짓이라고 호통치는 편지와 함께 3개월 분의 약을 부쳐왔다. 당장 군병원에 가서 X-ray 촬영을 하든지 아니면 휴가를 받아 결핵협회로 오라고 다그쳤다. 갓 전입해온 신병이라 그녀의 지시를 따를 수 없어 차일피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중대장이 급하게 나를 호출하더니 간호사가 보내온 편지를 보이면서 내일 당장 육군병원으로 후송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녀는 중대장에게 X-ray 필름과 함께 나의 병력, 치료 경과 등을 상세히 적은 편지를 보내왔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아직 완쾌상태가 아니라 무리한 병영 생활은 본인에게도 나쁠 뿐만 아니라 다른 전우들에게 감염시킬 우려가 있으니 육군병원으로 후송시켜 줄 것을 간곡히 호소했다.

나는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6개월간 치료를 받았다. 그 때 의병제대를 할 수 있었지만 제대해도 대학에 복학할 돈도 없으며, 직장도 없어 차라리 입고 먹고 잘 걱정 없는 군대에 그대로 남아 장래를 설계하기로 마음먹었다. 월남전 참전은 부서진 꿈이 되었다.

되돌아보면, 의무병으로 배치 받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의무병 주특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축산학과에 적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대학 수험에서 1차에 낙방하고 4년간 학비와 기숙사비 면제의 유혹에 끌려 전혀 취미도, 소질도 없는 건국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하여 한 학기를 간신히 마쳤다. 축산학과 덕분에 군대에서 특과로 통하는 의무병이 되어 힘든 훈련도 별로 받지 않고 시간적 여유도 있어 일본어를 독학하는 한편 영어와 독일어 단편소설을 읽어 가며 제대 후를 준비할 수 있었다.

 

나는 근황을 군사우편으로 심미택 간호사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철없는 짓을 저질렀다고 나무라면서도 매달 자기 돈으로 약을 사서 부쳐 오면서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 되지 않도록 약을 계속 복용하라고 신신 당부했다. 약 송부는 제대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약을 거르지 않고 착실하게 복용하여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부대에서 틈틈이 공부하여 대학 1학년 중퇴의 학력 장애를 넘을 수 있는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합격했고 제대 후 바로 공무원 시험에 패스하자, 그녀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나는 참으로 큰 빚을 졌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보답해드리지 못하여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내가 외무부 여권과에 근무할 때 심미택 간호사 가족이 마침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그 때 여권수속을 도와 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엽서를 다시 읽으면서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단법인 대한결핵협회’가 갑자기 생각났다. 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아직도 결핵으로 연간 3만 명 이상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며, 2천 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결핵협회와 심미택 간호사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마음으로 당장 평생회원 수속을 마쳤다.

1967년 8월 11일 엽서에 “현섭 씨, 요사이는 성당에 다니고 있어요. 아직 예비신자이기 때문에 정식 자격은 없습니다마는 열심히 믿어 볼까 합니다.”라고 쓴 것을 보면 그분은 나보다 30년이나 빨리 가톨릭에 입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로마 교황청 대사를 역임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도 연락할 길이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심미택 자매님, 당신은 ‘나의 수호천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책과 인생, 2019년 8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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