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구 / 애리조나호 기념관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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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07-04 16:01 조회1,0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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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전 주센다이 총영사
하와이 섬에 하이비스커스 꽃이 피기 시작한 2월어느날, 우리내외와딸네가족은관광객들을따라선착장에서셔틀보트를타고진주만바다위에있는흰색애리조나호기념관앞에도착하였다. 출입구로들어가니, 수병복장을한안내자가나타나우리들을데리고기다란단층건물끝머리에있는네모꼴벽면앞으로갔다.
그는이렇게인사말을꺼냈다. “우리애리조나호기념관(U.S.S. ARIZONA MEMORIAL)은1941년 12월 7일에일본비행기의폭격을받고바다속으로가라앉은전함애리조나호(U.S.S. ARIZONA)의잔해위에세워져있습니다. 이전함안에는900명의 수병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 대리석 벽면에는 그 날의 전사자 1,177명의이름이새겨져있습니다.”
안내자는목청을높여서“Remember, honor and understand the attacks of December 7, 1941.”하고외쳤다. 이말을풀이하면 ‘1941년 12월 7일의공격을기억하세요. 전사자들을공경합시다. 우리기념관의중요성을이해하여주세요.’라는뜻이다. 그안내자의우렁찬목소리에아내와나는머리가수그러졌다.
벽면하단에는“TO THE MEMORY OF THE GALLANT MEN HERE ENTOMBED AND THEIR SHIPMATES WHO GAVE THEIR LIVES IN ACTION ON DECEMBER 7, 1941 ON THE U.S.S. ARIZONA”라는 글이 새겨저 있다.비문을 요약하면 ‘애리조나호에서 1941년 12월 7일작전중에목숨을바친용사들의영전에’라는뜻이다. 내용이장엄한글이다.
내가가진『PEARL HARBOR, The Way It Was – December 7, 1941』이라는 안내서에는 1941년 12월 7일에 일본 비행기의 기습으로 전사한 미국 군인과 민간인의 이름이 들어 있다. 그날 죽은 민간인 사망자 명단에는 ‘Chip Soon Kim’이라는 이름도 눈에 띈다. 딸하고 와이키키 비치(Waikiki Beach) 근처로산책하러나갔던 아내가그책을사가지고왔는데, 호텔방에서읽고큰충격을받았다.
하와이 역사 기록에 따르면, 1941년 12월 7일 오아후 섬 북쪽에 포진해 있던 일본 기동 함대의 비행기 183대가 그날 아침 7시 55분에 진주만 포드 섬(Ford Island)의 미국 해군 항공대와 주위에 있는 함선과 비행장을 폭격하였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2차로 일본 비행기 167대가 미국 함선과 비행장을 폭격하고 10시경에 돌아갔다.
그날 아침에 미국인은 모두 2,390명이 죽었고, 1,178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중에서 민간인 사망자는 49명이었다. 그 당시 진주만에는 함선 186척이 있었는데, 일본 비행기의 폭격을 받고 침몰하거나 파손된 함선이 21척이었다. 일본 비행기는 29대가 격추되었고 조정사 55명과 소형 잠수함 승무원 9명이 죽었다.
기념관 한쪽에서 사위와 손자들이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있기에 다가가니, 애리조나호의 녹슨 원형 연통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 전함은 1941년 12월 7일 아침 8시 6분에 승무원 1,177명을 싣고 침몰하였다. 사체 일부가 인양되었을 뿐 승무원 900여 명이 선체 안에 갇혀 있단다. 승무원들이 바다에 묻혀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 옴을 느꼈다.
우리 가족은 출입구를 나와 셔틀 보트에 올랐다. 바다를 내려다보니, 애리조나호가 폭탄을 맞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이 떠오른다. 관광객들은 기념관을 방문하기 직전에 기록 영화를 보았다. 화약고에 정통으로 폭격을 맞은 애리조나호가 ‘꽝’ 소리를 연거푸 내면서 바다를 진동시키고, 검은색 불을 하늘로 내품으며, 승무원들이 갑판 위에서 절규하는 소리에 아랑곳없이 기울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 일행은 동쪽 육지의 선착장에서 셔틀 보트를 내려 비지터센터의 전시실을 찾아갔다. 일본 기동 함대의 기함 아카기(AKAGI) 항공모함의 모형에는 날개에 일장기를 달고 있는 전투기들이 가득 실려 있다. 바로 옆에는 거포가 달린 애리조나호의 모형이 있다. 호놀루루 주재 일본총영사관에서 영사로 근무하며 미국 군사 시설을 염탐하던 일본 군인의 사진도 있다.
나는 벽에 걸린 「Japanese Expansion in Asia and the Pacific」이라는 지도를 자세히 보았다. 그 그림에는 1933년까지 한반도 · 대만 · 사할린 남부가, 1938년까지 만주 · 산동 반도의 일부가, 1941년까지는 중국 동북부 · 외몽고 일부 · 불령 인도지나가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고 표시되어 있다. 1941년 12월에 일본 기동 함대는 진주만을 기습하였다.
내가 읽은 역사책 중에는 동경대학 교수요 역사교육연구소의 요시오카 쓰토무(吉岡力) 소장이 지은 『세계사의 연구(世界史の硏究)』라는 명저가 있다. 그 책에는 ‘태평양전쟁’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지도가 들어 있다. 그 지도에는 일본이 침략한 국가와 지역이 검은색 점선으로 이어져 있으며, 점선은 “일본의 최대 진출선(日本の最大進出線)”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미국의 하와이 섬에는 검은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고 그 밑에는 “1941. 12. 8. 일본의 진출(日本の進出)”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요시오카 쓰토무 소장의 저서에 나오는 ‘진출’이란 말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일본의 진출’은 마땅히 ‘일본의 공격’이라는 말로 바꿔야 할 것이다.
일본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의 현관에는 일본이 점령한 지역을 적색으로 표시한 지도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 적색 지역에서 전사한 군인들이 제신(祭神)으로 모셔져 있다는 글이 명기되어 있다. 그곳에는 태평양 전쟁을 기획 · 시작 · 수행한 A급 전범 14명의 위패도 합사되어 있는데, 일본 수상 또는 각료와 국회 의원이 참배해 왔다.
전시실을 나와 기념품 가게에 들러서 『Pearl Harbor: A Hand Held History』라는 핸드북을 샀더니 저자가 책 날개에 “Aloha from Pearl Harbor”라고 자서해 준다. 표지에는 코가 높은 할아버지가 진주만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내와 함께 저자 앨런 세이든(Allan Seiden) 에게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진주만에는 비가 왔는지, 멀리 보이는 애리조나호 기념관의 성조기 위에 무지개가 떠 있고 그 너머에 높이 서 있는 야자수 나뭇잎 사이에 해가 걸려 있다.
[2014. 3 <한국수필> 2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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