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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 안개 낀 노량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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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외교협회 작성일18-01-05 13:52 조회2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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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노량진역

 

    이윽고 한강철교를 건너는 열차 소리가 그쳤다. 조금 있자, 차창 밖으로 鐵道始發地라는 석비가 내다보인다.           
     나는 이번 역인 노량진역 4 승강장에서 내렸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철로 건너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풍겨 오는 비린내이다.  
    
손님들이 서둘러 열차에 올랐다. 거의 모두 학생들이었다. 역전에는 학원이 많다. 열차가 떠나는 것을 보니, 전차를 타고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 생각난다.

    눈앞 전광판에 열차가 잠시 도착합니다라는 불빛이 들어왔다. 인천행 열차가 도착하였다. 승객들이 많이 내렸다.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손목시계를 보니 5시가 넘었다. 날씨가 추운데도 승강장 의자에 앉아 아내를 기다렸다. 제기동 약령시에 있는 한약국에 다니는 아내가 시간이다.

    열차가 와서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수원 가는 열차였다. 객차 바깥벽에 소년과 소녀가 웃고 있는 그림이 붙어 있었다. 마지막 칸에는 여차장이 웃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뿌연 안개가 노량진 수산시장 지붕 위까지 끼었다. 너머 북쪽에 우뚝 있는 63빌딩에도 안개가 끼어 있어서, 빌딩 유리창에 켜진 불빛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인천행 열차가 와서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아내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청년 하나가 젊은 여성에게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하고 웃으며 열차에 올랐다.

    노량진 수산시장 지붕 너머에 63빌딩의 자태가 또렷이 나타났다. 밤하늘에 빛나는 고층 빌딩의 불빛들을 바라보니, 아내 걱정도 가시는 같았다.

    마이크에서 수원 가는 열차가 들어온다고 하기에 벌떡 일어섰다. 열차가 달려와서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아내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았다.

    플라스틱 의자에 도로 앉았다.  다리가 시려 왔다. 온몸에 소름도 끼쳤다. 앉은 의자가 차갑기 짝이 없었다. 안개가 끼었기 때문이다.

    눈이 커다랗고 코가 오똑한 외국인이 한국인 아가씨와 함께 옆에 와서 앉았다. 영어 학원 원어민 강사라고 하였다. 그들이 앉은 의자가 따듯해 보였다.

    마이크에서 인천 가는 열차가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려 왔다. 열차가 도착하는데, 보니 객차 바깥벽에 태극기 그림이 붙어 있었다. 손님들을 태우고 떠나는 모양이 마치 태극기를 흔들어 보이며 가는 같았다.

    나는 13년 전인1990 4 초순에 아시아나 항공의 1번기가 날개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일본 센다이(仙臺) 공항에 착륙하던 모습이 불현듯 연상되었다. 손님들을 태우고 서울로 날아가는 광경이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그로부터 3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1993 3월 하순, 미야기 (宮城縣) 지사 부인이 중학생인 아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내가 정중히 초대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나는 혼마(本間) 지사의 사진이 실린 서울편의 취항에 관한 신문 기사를 부인에게 보여 주며, 서울 센다이 항공로 개설을 추진해 감사하였다.

    그러자 부인은 우리 안방의 장판을 만져 보며, 당시에 센다이 주재 총영사였던 내가 항공로 개설을 위해 수고를 했다고 하였다. 우리 부부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하였다.

    수원 가는 열차가 와서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저만큼 승강장에 할머니 분이 있었다. 아내인 줄로 알고 다가갔더니 노인이다.

    아내가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안방을 그리며 역전으로 나왔다. 손이 허전함을 느끼며.

                                                             [2004. 2〈文學空間〉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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