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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 역사의 섬 거문도 방문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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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외교협회 작성일17-10-11 16:27 조회2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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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글 (上)편에 이어............................


그런데 바로 이 무렵은 이미 아프카니스탄에서 영?러 간의 분쟁이 해결되었기 때문에 영국은 거문도점령을 러시아에 대한 잠정 견제책이라고 한 이유를 상실하게 되었음으로 영국 조야에서 이를 포기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로즈베리 외상은 4월 14일 “영국의 거문도 점령은 원래 중국 또는 그 속방의 권리이익을 침해하려는 의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또한 잠시라도 이를 영유하려는 기도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동 도서가 만약 타 강국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영?청 양국의 불리를 초래함이 적지 않을 것을 겁내고 있을 뿐이다. 중국이 만일 제3국이 장래 거문도를 점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증한다면 영국은 안심하고 철퇴하는데 인색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발표하게 되었다.

길보를 받은 이홍장은 영국철수 러시아가 거문도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것을 서약케 하는 막후 외교를 펼치기 위해 주청러시아공사 래디켄스키(Ladygensky) 공사와 수차례의 줄다리기 외교협상을 전개하였다.

청국정부는 래디켄스키 공사와의 회담을 통하여 영국이 요구하는 불점령의 보증을 러시아로부터 얻었음으로 1886년 10월 31일(음 10월 5일) 영국공사 왈샴(John Walsham)에게 이를 전했다.

왈샴 영국공사가 청국정부에 거문도철퇴에 동의하는 공한을 보낸 것은 1886년12월 24일(음 11월 29일)이었다. 후속조치가 취해졌다. 청국총리아문을 방문한 왈샴 공사가 본국정부의 전훈으로 거문도철퇴를 통고하고 “청국의 보장을 신뢰한다”는 간단한 요지의 조회와 조선정부에 전달할 통첩초안은 1887년 3월 1일(음 2월 7일) 원세개에 의해 조선정부에 전달됐다.

영국이 거문도를 완전히 철수한 것은 1887년 2월 27일(고종 24년)이었다.

조선정부는 그 진위를 확인코저 경략사 이원회를 현지 거문도로 보내 영국의 철퇴여부를 조사케 했다.

이경략사의 복명서엔 “전선일조가 전신국 자리에 묻혀 있는데 이는 상해로 통하는 해저전선이고 현재는 절단되어 있다. 영인의 무덤이 9개 있고 무덤마다 묘표가 세워져 있으며 작은 보트 1척이 모래사장에 걸려있었고 저울대 1개, 벽돌 700여 개가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고 하여 영국의 철퇴를 확인했다.

필자의 거문도 여행은 십년 전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원들과 학술차원의 여행이었고 금번 여행은 19세기 말 세계최강대국가였던 영국의 극동에서의 위상을 살펴보기 위해 구체적으로 거문도 사건을 국제적으로 일별해 보고, 영국인들이 거문도 주민들에게 끼친 영향력과 인상 등을 현지 주민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알아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영국군 묘지는 거문도 여객선 터미널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의 가까운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작은 언덕배기에 위치하였고, 1886년 사망한 영국해군사병 두 명과 1903년 사망한 한 명의 해군병사 기록이 이 묘비문에 새겨져 있으나 나머지 묘지는 알 길이 없다. 주한영국대사관, 한?영협회, 영국부인회는 한?영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1983년 이 패를 세웠다고 한다.

영국수병들이 사망한 이유는 제방을 만들다가 화약폭발 사고로 사망했거나, 왜인들의 주점으로 야간에 헤엄쳐 가다 사망한 자들이고 거문도 주민들과 싸운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바로 묘지 좌우에는 1885년 당시에 촬영한 사이즈의 사진 2매가 걸려 있었다. 한 사진에는 영국인 2명과 한국인 13명이 함께 촬영한 사진이 보였는데 망건을 쓰고 담뱃대를 촌장과 역시 망건을 3명의 동네영감님들 아이들 2명이었는데 영국인에게 우호적이고 친근한 인상을 보여 주었다.

필자는 또 관광안내자의 배려로 숲으로 덮여 있어 하마터면 놓칠 뻔 했던 거문도 해저케이블 육양지점을 찾아보았다. 1885년 거문도로 부터 중국 상해까지 해저케이블이 포설된바 있으며, 이는 조선에 육양된 두 번째 전기통신시설이다. 1904년 일본 사세보에서 중국 대련까지 포설된 해저케이블이 이곳에서 직접 육양된 바 있다. 이는 거문도가 울릉도와 함께 극동의 통신의 요충지였음을 뜻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역사적 지리적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표지석을 세운다고 알려주었다.

거문도 토착 원주민 조상 때부터 내려온 구전에 의하면 영국군은 요새화 작업에 섬주민들의 노동력 제공을 필요로 하였으며, 사역을 시킬 때마다 하루 6펜스(Pence)를 주었고, 노동의 대가로 받은 수익은 빈곤에서 허덕이던 그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작업현장에서 일하던 아이가 사고를 당해 다쳤을 때 그 소문을 들은 영국함장이 긴급히 의사를 데리고 와 급히 상처를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완치될 때까지 돌봐 주었다고 한다.

영국인들은 헐벗고 굶주린 걸인에게 옷과 식료품을 주는 동정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며 군사시설에 필요한 토지가 있으면 돈을 주고 주인과 타협하여 임대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밭에서 키운 야채를 비롯해 닭이나 돼지도 수병에게 비싼 값으로 팔 수 있어서 모두들 즐거워했다. 또 영국함선이 한 척 들어올 때마다 배로부터 많은 소들이 뭍으로 끌려 나와 깊은 산속 계곡으로 끌려가 도살되고, 영국인은 그 쇠고기를 썰어 큰 드럼통 같은 곳에 담아 배로 실어갔다. 산비탈에 소 내장이나 뼈, 다리, 꼬리 등은 그대로 내버려두어 마을 사람들의 차지가 되어, 골고루 나눠 집으로 가져가 생전 처음으로 포식했다고들 한다.

섬사람들은 영국군이 주둔했던 22개월을 회상하며 조선정부에서 부역을 시키면 무보수인데 영국 사람들은 거문도민에게 사역을 시킬 때마다 노임과 먹을 것을 주어 왔다고 하며 영국군의 철수를 아쉬워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현재 인구 29만 명의 여수시에 년 1,300만 명 정도의 관광객이 오는데 비록 바닷길이긴 하나 인접한 거문도 관광객 수는 하루 두 편의 여객선(300여 명 승선 가능)으론 천상의 비경을 숨기고 있는 거문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택시 2대밖에 없는 무공해지역인 거문도의 관광진흥을 위하여 정부차원의 화끈한 지원을 기대하며, 특히 외국인 투숙 가능한 호텔시설과 여수-거문도 간 선편운행 증가의 긍정적 해결을 바란다.

필자는 모로코에서 일할 때, 모로코 외무성 초청으로 모로코 중부지역 페즈에서 개최되는 11세기 모로코 모라비드 왕조시대의 궁중음식 홍보를 위한 행사에 라바트 주재 외교단과 모로코 인사들과 함께 참관한 일이 있었고 이는 오늘날의public diplomacy’에 해당한다고 본다.

우리도 구한말에, 열강대결의 상징이었던 거문도를 활용하여 외교도서 (Diplomatic Islands)로 명명하고 주한 외교관은 물론 많은 외국인들이 이 섬을 찾을 수 있도록 제언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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