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김원수 / 첨단기술의 지정학과 국제 규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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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조회 27회 작성일2025-04-23 15:33:36본문
첨단기술의 지정학과 국제 규범의 미래
2025-04-18 13:00:09 게재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불가측성을 넘어 오락가락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게 표면적 명분이지만 그 뒤에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계산도 깔려있다. 그러나 중국이 밀접히 연관되어 이미 복잡하게 짜여 있는 세계적 공급망의 사슬을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하는 대로 재편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공급망이 경제적 논리만이 아닌 지정학적 계산에 영향을 받는 지경학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 추세다.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중국 간의 견제와 경쟁은 그 폭과 깊이에서 더욱 넓고 깊어질 것이다. 특히 양국 간 패권경쟁의 중심에는 첨단기술의 지정학과 지경학이 놓이게 될 것이다. 패권경쟁의 향배를 좌우할 가장 큰 변수 중 하나가 첨단기술이기 때문이다.
첨단기술의 고도화를 노리는 것은 미중뿐만이 아니다. 양국을 추격하려는 다른 기술 보유국들은 물론 다국적기업들까지 기술 패권경쟁에 가세하면서 첨단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
과거에도 첨단기술의 발전속도는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해 놀랍게 다가올 때가 많았다. 특히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술 발전의 폭과 속도가 그러하다. 양자컴퓨팅의 상용화에 아직 넘어야 할 장벽들이 남아 있지만 극복되는 순간에 인간지능을 뛰어 넘는 범용 수퍼 인공지능의 출현은 기정사실화 될 것이다.
첨단기술 발전과 통제 규범 사이의 큰 간극
첨단기술이 빛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발전되어 나가는 반면에 기술 발전의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기 위한 통제 규범의 발전 속도는 여러 요인으로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모양새이다. 갈수록 기술과 규범의 간극이 벌어지면서 통제되지 않는 부작용의 위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 근저에는 두개의 중요한 국제적 균열 요인이 작동한다. 첫째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와 없는 국가간의 기술격차(technology divide)다. 대체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은 기술 발전을, 없는 국가들은 규제 우선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전통적 지정학적 분류인 글로벌 남과 북(global south vs north) 차이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기술을 보유한 국가들간의 가치격차(value divide)다. 대체로 민주주의 성향 국가들은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보호 등을, 권위주의 성향의 국가들은 국가안보와 통제를 우선시한다. 어떠한 가치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지에 대한 의견대립은 국제 규범의 출발 지점에 대한 합의를 저해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 지정학적 분류인 글로벌 동과 서(global east vs west)의 차이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두개의 국제적 균열은 국제 규범 마련에 필수적인 국제적 컨센서스 형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 질 미중 간 패권경쟁은 균열을 줄이는 게 아니라 증폭시킬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어렵다고 두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통제되지 않는 첨단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폐해가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바이오 기술의 발전이 생화학 무기의 무분별한 사용을 쉽게 하거나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스스로 판단하고 싸우는 로봇 군단으로 이어지면 안될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공지능의 군사적 사용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의도하지 않은 핵겨울을 초래할 수 있는 핵무기 사용에 인간 통제 없는 인공지능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인류생존 위한 규범 형성에 미중 협력 필수
국제적 컨센서스 형성을 위한 노력은 인류생존을 위해 반드시 방지해야 할 위험을 규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기술과 가치의 격차에 따른 정치적 이견이 작동할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는 미중의 합의가 필수적이다. 양국의 합의 없이 국제 규범의 최소한의 공통분모 마련은 기대하기 어렵다. 양국간 협의를 위한 대화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이제 출범한 트럼프행정부 하에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미중 사이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적 고려의 딜레마에 처해 있는 우리를 비롯한 유사입장국들이 1.5트랙 등을 활용해 양국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양국간 이견이 적고 인류 전체에 대한 파급 효과가 큰 분야에서 시작해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미중 패권경쟁의 평화적이고 책임있는 관리에도 도움을 주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위기 방지가 기회의 창이 될 것이다.
김원수 경희대 미래문명원장 전 유엔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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