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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정태익 / 텍사스 출신 부시, 긴 대화보다 짧은 대화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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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4-03-03 17:21 조회2,9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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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익 전 청와대외교수석의 외교비사


"텍사스 출신 부시, 긴 대화보다 짧은 대화 좋아해" 김대중·부시 정상회담 \'워싱턴 냉탕\'과 \'상하이 온탕\' 오간 까닭은?

  

[조선일보] 일시 : 2014.03.03 14:08


한미 정상회담의 실패학과 성공학

 
 필자는 2001년 10월 7일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으로 임명돼 청와대 출근 첫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결정을 알리기 위해 주무시던 대통령을 깨운 ‘호된 신고식’을 치루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후 10월 15일에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 방한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한일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일에 몰두해야만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정상회담 자리에 배석한 것이 외교안보수석으로서의 ‘공식 데뷔전’이 되었다.

“고백하건대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에서 납치됐던 해부터 정치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랬던 제가 이렇게 일본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흠모해 왔던 김 대통령과 이렇게 정상회담을 갖게 되어 감격스럽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인사말로 정상회담은 시작됐다. 이어서 김대중 대통령이 다음과 같은 요지의 환영사로 답했다. (이하 등장하는 대화 내용은 필자의 메모와 기억에 바탕해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2002년 3월22일 한일 정상 확대회담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 2002년 3월22일 한일 정상 확대회담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2002년 3월22일 한일 정상 확대회담에 앞서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악수하고 있다.“한일 두 나라는 수천 년 동안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100년의 불행한 역사가 그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우호관계를 일거에 덮어버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짧은 불행한 시기에 있었던 역사적 유산을 하루 속히 청산하는 것이 두 나라 지도자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교과서 문제는 두 나라 학자간의 공동연구로, 야스쿠니신사 문제는 전범의 유해를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긍정적 검토를 바라겠습니다.”

이에 고이즈미 총리는 “김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탁견에 공감하고 언급하신 내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면서 “다음주 상하이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시 갖게 될 개별 정상회담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재응답했다. 이로써 필자는 정상회담 배석이라는 ‘공식 데뷔전’도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전략 “북한 문제 일체 거론하지 않겠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인 10월 20일부터 이틀 동안 중국의 상하이에서 제9차 APEC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공식 정상회의는 물론이고 개별 정상회담을 준비하느라 필자는 다시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쳐야 했다. 실제로 상하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일정 외에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칠레, 인도네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등 8개국 정상들과의 개별 회담을 소화해야만 했다.

아시아와 태평양 공동체의 달성을 장기 비전으로 삼고 있는 APEC은 아태지역의 경제적 성장과 번영을 목표로 삼고 있다.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12개국간 각료회의로 출범한 APEC은 1993년부터 정상회의로 격상되어 오늘날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제9차 상하이 APEC 정상회의는 미국에서 발생한 9·11사태 이후 열린 첫 번째 국제회의였다. 여기에 미·일·중·러 4대국 수반을 위시하여 20개국의 정상이 모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APEC 정상회의 본래의 사명은 경제 문제를 다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9·11사태로 정치적 성격을 띤 테러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에 특히 신경을 썼다. 그해 3월 8일 김 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해 1월 21일 취임한 부시 대통령과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었다. 하지만 부시 정부가 대북정책 검토를 미처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원활한 대화가 이뤄지지 못했고, 국내 언론은 참담한 외교 실패로 평가하고 있었다.

2001년 10월 19일 19일 오후 상하이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왼쪽)과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 2001년 10월 19일 19일 오후 상하이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왼쪽)과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2001년 10월 19일 19일 오후 상하이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왼쪽)과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필자의 판단으로는 당시 치열한 선거전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 인식이 워낙 강경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본다. 더욱이 부시 대통령은 당시 러시아와 북한으로부터의 미사일 공격 가능성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고 미사일방어망(MD)을 구축하려는 세계전략을 구상하고 있었고, 나아가 한국을 MD망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수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이 상하이에서 부시 대통령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질 때에는 이러한 전철을 밟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마침 상하이로 출발하기 직전 통상적인 정상회의 준비사항 보고회가 있었는데, 필자가 준비한 면담자료를 브리핑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나는 상하이에서 부시 대통령을 면담할 때 9.11테러만 이야기하고 북한 문제를 일체 거론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필자는 깜짝 놀라서 이렇게 반문했다.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겠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가벼운 미소만 지었기에 당시 필자는 매우 의아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필자는 대통령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텍사스 출신 부시 짧은 대화 좋아하는 스타일… “길게 말씀하지 마시고 짧게 하시지요”

“텍사스 출신인 부시 대통령은 듣기만 하는 것보다는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따라서 말씀하실 때 길게 말하는 것보다는 짧게 끊어서 말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끝낸 상황에서 상하이행 대통령전용비행기가 서울공항을 이륙하였다. 상하이에 도착하니 APEC 정상회담이 열리는 푸둥지역은 그 일대 전체에 대한 완전 통제로 자동차가 거의 없는 마천루의 도시로 바뀌어 있었다. 자본주의 자유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미국의 뉴욕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해 보이는 상하이는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을 상징하고 있었다.

특히 10월 19일 정상회담 전야제에서는 상하이 밤하늘을 불꽃놀이로 장시간 수를 놓는 장관을 보여주었는데, 필자가 워싱턴에서 정무참사관으로 재직할 때 매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펼쳐졌던 불꽃놀이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강택민 치세를 과시하려는 거대한 기획행사는 필자에게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다음날부터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주요 합의가 도출되었다. 첫째, 9·11사태 이후 악화되고 있는 세계 경제의 회복을 위한 정책 공조를 강화한다. 둘째, 보고르 목표 달성 촉진을 위한 ‘상하이 합의’와 디지털사회 구축을 위한 ‘e-APEC전략’을 채택한다. 셋째, 세계화와 신경제에 대한 대응수단으로 인적자원 개발을 위해 ‘베이징 이니셔티브’를 추진한다. 끝으로 반테러 특별성명도 채택하였다. 당시 한국은 IT강국으로서 APEC 사이버교육 협력컨소시엄 출범에 앞장을 서는 등 독보적 기여를 하였다. 모든 회의는 차질 없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는데, 오찬과 만찬 행사에 엄청난 인력이 투입되는 등 인해전술의 대국다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부시의 질문 “김정일 위원장 어떻게 다뤄야 합니까?”

APEC 정상회의 전야제가 있었던 10월 1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우리 측에서는 한승수 외무부장관과 외교안보수석인 필자가 배석하였고, 미국 측에서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이 배석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부시 대통령이 상하이에 오기 전에 워싱턴 소재 모스크를 방문하여 미국의 반테러 행위가 결코 이슬람을 부정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셨는데, 이는 매우 용기 있고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부시 대통령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시하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계속 발언을 이어갔다.
“테러를 근절해야 경제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테러를 근절하지 못하면 국제질서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테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언제, 어디서, 어떤 무기로 공격할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위험하며, 이것이 방치되면 세계의 평화는 깨질 것입니다. 안심하고 비행기로 여행도 할 수 없고, 고층빌딩에 올라가는 것도 불안해질 것이고, 편지 같은 우편물도 마음 놓고 열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국제질서와 개인생활을 지키지 위해서라도 테러를 반드시 종식시켜야 합니다. 미국의 테러응징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할 수 있는 협력을 다할 것입니다.”

이번에는 부시 대통령이 화답했다.
“한국과 김대중 대통령이 신속하고 성의 있는 태도로 협력하고 테러를 반대해 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희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보고 받은 바에 의하면 탄저균 공격을 받아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시 대통령이 화제를 바꾸었다.

“지금부터 북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미국이 대북정책을 검토한 뒤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조건없는 대화를 제의하였지만 북한이 답을 안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어떻게 다루면 좋겠습니까?”

순간 배석하고 있던 필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 준비 점검 당시 예견한 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오로지 부시가 반길 주제인 반테러 이야기만 하였고, 이에 만족한 부시 대통령이 오히려 북한 문제를 먼저 거론하며 조언을 구한 것이다. 김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지만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미국 일각에서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이므로 남북 대화나 북미 대화를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김정일 위원장을 100% 믿는 순진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도 미국인과 같이 실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미국은 소련을, 공산주의를 믿지 않았지만 소련과 대화했고, 교역도 했고, 헬싱키조약도 맺었습니다. 또 중국을 믿지 않았지만 닉슨 대통령이 대륙까지 찾아가서 마오쩌둥을 만났고, 그것이 오늘날 중국의 개방과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부시 대통령이 답하지 않고 다음 말을 기다린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 대통령이 다시 말문을 이어갔다.
“저는 이러한 외교 행위들이 미국의 국익과 일치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김정일 위원장을 믿지는 않지만, 만나서 대화를 해야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에 북한에 접근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은 단순히 평화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북 관계를 개선해야 비로소 우리는 대륙과 연결됩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철도와 도로가 열릴 것이고, 그래야 우리는 광대한 유라시아 지역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국가 이익에 공헌할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할 것입니다.”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이 통역되는 순간 부시 대통령의 얼굴을 주의해서 보았다. 부시 대통령은 ‘실용’, ‘국익’ 등의 표현이 나올 때 고개를 끄덕였고, 얼굴에는 공감대와 만족감이 넘쳤다. 다음과 같은 마무리 발언에서 부시 대통령의 진심이 그대로 읽혀졌다.
“오늘 김대중 대통령의 진정한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통찰력 있는 대북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이것은 APEC 정상회의 주최지인 상하이의 놀라운 변신만큼이나 놀라운 변화였다. 불과 7개월 전에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과 확연히 다른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정상회담 당시에는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막연히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관이 순진할 뿐만 아니라 대북 지원정책도 일방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북한의 위협을 MD 구축의 명분으로 삼아 남한을 MD 체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너무 강했다.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와의 ABM조약 파동까지 불거지면서 한미 정상회담은 최악의 상황에서 열렸던 것이다.

제10차 APEC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멕시코를 방문중인 김대중 대통령(왼쪽)이 2002년 10월 27일 로스 카보스 웨스틴호텔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가운데),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3국 정상회담을 마친 후 정원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 제10차 APEC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멕시코를 방문중인 김대중 대통령(왼쪽)이 2002년 10월 27일 로스 카보스 웨스틴호텔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가운데),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3국 정상회담을 마친 후 정원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제10차 APEC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멕시코를 방문중인 김대중 대통령(왼쪽)이 2002년 10월 27일 로스 카보스 웨스틴호텔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가운데),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3국 정상회담을 마친 후 정원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필자가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부터 절치부심하고 지난 7개월 동안 차기 한미 정상회담에 대비해온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대북관에 대한 미국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일에 주력했고, ABM조약 파동에 책임을 물어 인사 조치를 취하는 등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상하이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보여준 김대중 대통령의 판단과 전략은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정상회담 ‘주연’은 정상, 참모는 영원한 ‘조연’

정상회담은 정상간에 이루어지는 국제정치적 행위이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참모는 자료를 만들거나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조연’이나 ‘스탭’에 불과하고 주도적 연출력과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야 하는 ‘주연’이나 ‘감독’은 정상이다. 그런 시각에서 바라볼 때 김대중 대통령은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판단력이 예리한 주연이자 감독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김 대통령은 면담 자료를 본인의 판단에 따라 재구성하여 시행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도 오랜 정치 생활을 하면서 온몸으로 체득한 지혜라고 생각된다. 한 번 자신의 논리가 구성되면 쉽게 바꾸지 않고 일관되게 반복해서 말하기 때문에 참모는 물론이고 누구나 예측이 가능하였다.

부시 대통령과의 상하이 정상회담에서 상대의 마음을 움직였던 테러에 대한 발언도 9·11사태가 발생하자 김대중 대통령이 테러에 대한 생각을 평소 정리해두었던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알기 쉽고 설득력이 있는 발언 내용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공감을 표시하였다. 실제로 “테러를 근절하지 않으면 (탄저균 공격 때문에) 편지도 보낼 수 없다”는 김 대통령의 평이한 언급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그것(탄저균 공격)은 치료가 가능하다”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김 대통령은 대화가 부시 대통령의 취향에 맞게 진행되도록 배려한 것이다. 물론 이에 만족한 부시는 김 대통령이 정말 하고 싶었던 발언을 할 수 있도록 질문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정상회담은 최고의 외교정책 결정권자의 만남이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상대의 외교정책과 수단에 대한 이해는 물론 사소한 태도와 습관에 대한 철저한 파악도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출신이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짧게 끊어서 하는 대화법을 좋아하는 것으로 필자는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대화 습관이 워싱턴 정상회담에서는 제대로 입수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당시 미국에 대해 잘 아는 김경원 전 주미대사가 대통령 자문관 자격으로 대통령을 수행하였지만 가까이서 조언할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필자는 적기에 상황에 맞는 조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 마무리하겠다. 제9차 상하이 APEC 정상회의 당시 처음으로 등장한 정치문제인 테러방지책에 관해서 강대국간에 이견이 전혀 제기되지 않았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중국은 중앙아시아 접경인 위구르와 티베트 지역으로부터의 테러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러시아는 체첸 등 카프가스 지역으로부터의 테러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테러방지책에 대해서는 강대국간의 동변상련의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테러규탄 결의문을 채택할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두 번째 만남인 상하이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필자는 당시의 대통령 참모로서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감되어 우선 안도하였고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승리의 축배는 변화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사소한 것까지 철저히 준비하는 자에게 예비된 선물이라고 믿는다.

필자가 소개한 비화와 관련된 청와대 공보수석실이 2001년 10월 20일자로 배포한 공식브리핑자료를 아래 밝힌다.
[APEC]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추가 브리핑
http://15cwd.pa.go.kr/korean/data/db/press/view.php?f_nseq_tot=25317&f_row=28

 

출처: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02/20140302013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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