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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최봉름 / 이라크서 맞은 두번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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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3-08-16 23:44 조회1,6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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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서 맞은 두번의 전쟁



이라크서 맞은 두 번의 전쟁
▲이라크서 맞은 두 번의 전쟁,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최봉름 초대 이라크 대사가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며 이라크 수교부터 걸프전 발발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2013.4.22 airan@yna.co.kr

최봉름 초대 이라크 대사…수교에서 전쟁까지

"교민 600여명 1천900km 육로 탈출작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90년 8월 2일 오전 2시.

이라크 최정예 부대인 \'공화국 수비대\' 군인 10만명이 남쪽으로 이웃한 쿠웨이트로 밀어닥쳤다.

아닌 밤중에 기습당한 쿠웨이트는 맥없이 뚫렸다. 쿠웨이트 왕족은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은 즉시 이라크를 규탄했다.

쿠웨이트 상황을 확인하고 있던 최봉름 당시 이라크 주재 대사는 서울의 외무부 본부로부터 긴급 지시를 받았다.

쿠웨이트에 진출한 우리 건설사 근로자 3명이 이른 아침 출근길에 이라크 점령군에 잡혔다는 것이다. 다른 외국인 포로와 함께 바그다드로 호송된 이들을 하루빨리 석방시키라는 지시였다.

최 대사는 그 길로 다급히 이라크 외무성으로 향했다. 바그다드에서 두 번째 맞은 전쟁은 그렇게 현실로 다가왔다.

◇ "부임하자마자 2차례 피난"

1987년 11월 \'KAL 858기 폭파사건\'으로 숨진 115명 중에는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차 서울로 향하던 당시 바그다드 총영사도 있었다.

당시 이라크에는 9천여 명이나 되는 우리 국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1980년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총영사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듬해 3월 9일 바그다드로 부임한 최봉름 총영사는 출근날부터 이곳이 전쟁터임을 실감했다.

우리 공관의 지척에는 이라크 대통령궁이 있었다. 최 총영사는 궁을 빗맞은 이란의 박격포탄이 하루 수차례씩 티그리스 강가에 떨어지는 모습을 가슴 졸이며 지켜봤다.

"전쟁이 종반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전쟁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6·25 전쟁을 눈앞에서 봤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2차례나 피난을 가야 했다.

다행히 8년간 계속되던 전쟁은 부임 5개월째인 1988년 8월 끝났다.

최 총영사는 100만 군인의 실업난과 높은 인플레율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전후 이라크에서 우리 기업과 동포들을 돕고 보호하는 데 전념해야 했다. 또 \'한·이라크 수교\'라는 더 큰 과제도 짐으로 남아 있었다.

원래 이라크와 가까운 쪽은 우리보다는 북한이었다.

1968년 북한-이라크 수교 이후 이어진 돈독한 관계가 허물어진 것은 이란-이라크 전쟁 덕분이었다. 북한이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다는 이유로 이라크는 1980년 북한과의 관계를 끊었다.

우리 정부는 1981년 바그다드 총영사관이 들어선 이후 최종 목표인 수교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외국 외교관을 곧잘 스파이로 의심했던 후세인 정권은 좀처럼 외교관계 확대를 원치 않았다. \'선경협 후수교\' 입장만을 고수할 뿐이었다.

◇ "후세인, 한국 기업활동 꿰뚫어"

최 총영사는 1988년 12월 제4차 한·이라크 공동위원회 참석차 서울로 떠날 준비를 하던 알마르주크 이라크 주택건설장관으로부터 하나의 유용한 정보를 얻게 된다.

"알마르주크 장관은 \'방한시 한국 외무부 장관을 이라크로 초청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귀띔했습니다. 수교와 관련이 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서울로 전문을 보냈습니다."

\'장관께서는 반드시 바그다드 방문 조건으로 수교를 내걸라\'는 조언이었다.

최 총영사는 이라크 외무장관이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게 한국과는 경협보다 수교를 먼저 하자고 건의했다는 이야기를 외무부 정무국장에게서 뒤늦게 들었다.

후세인 대통령이 그 건의를 받아들인 것은 그만큼 이라크가 전후 복구를 위한 지원에 몸이 단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수교를 위한 접촉이 본격화되자 ▲ 외무장관 공동성명 확정 ▲ 외무장관 회담서 경협 문제 제외 ▲ 외무장관의 후세인 예방 등 3대 선결 조건을 내걸었다.

공동성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난제였다. 최 총영사는 이라크측에 사정을 솔직히 설명한 다음 경협 문제는 1989년 11월 바그다드에서 열리는 양국 공동위원회에서 논의하자는 우회로를 제안했다.

1989년 7월 9일 바그다드에서는 양국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다. 골머리를 앓았던 수교는 예상보다 \'싱겁게\' 이뤄졌다.

최호중 당시 외무장관과 최 총영사는 회의 시작 1시간 후 갑작스레 후세인 대통령 예방 계획을 통보받았다.

"후세인 대통령은 나(신장 171cm)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범의 눈\'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눈에 범인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15분간 이뤄진 예방에서 후세인 대통령이 이라크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활동 현황을 훤히 파악하고 있다는 데 더 놀랐다.

"후세인은 우리 기업의 공사 현황을 다 꿰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도 공사를 중단하지 않아서 매우 고맙다고 말했지요."

◇ "쿠웨이트 동포 600여명 1천900km 육로 탈출"

1990년 8월 2일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바그다드 총영사에서 수교 후 이라크 주재 초대 대사가 된 최 대사는 이라크군에 붙들린 쿠웨이트의 우리 근로자 3명을 구하기 위해 외무성 의전장을 먼저 찾았다.

영사국장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던 의전장에게 "한국인 근로자들은 일하러 가다가 잡힌 것일 뿐 무슨 전쟁포로냐. 한국 기업이 얼마나 이라크에서 많은 일을 하는지 알지 않느냐"면서 즉각 석방을 계속 설득했다.

결국 다음날 외무성의 연락을 받고 우리 근로자들을 데려올 수 있었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라크 정부 당국과 협의해 쿠웨이트의 우리 동포 수백 명을 탈출시키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라크 외무성 관계자들은 한국인들이 육로로 철수해야만 군이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쿠웨이트에서 바그다드까지 900km, 바그다드에서 다시 요르단 암만까지 1천km. 도합 1천900km의 너무 험난한 길이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미 쿠웨이트에서는 공포에 질린 외국인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철수 작전의 총사령관이 된 최 대사는 이라크 정부와 수시로 접촉하며 쿠웨이트 현지 동포들이 바그다드로 건너오는 과정을 점검했다. 새벽녘에야 바그다드에 도착한 600여명의 동포 중에는 만삭의 여성도 있었다.

"만삭의 몸으로 다시 1천km를 가야 하는 것이 걱정돼 여행을 극구 만류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던 산모가 암만에서 순산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마음을 쓸어내리기도 했습니다."

최 대사는 쿠웨이트의 우리 대사관 직원들 출국을 교섭하는 일로도 한참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라크 정부가 이들 직원에게 한 달 가까이 출국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라크 측에서 강제로 전기와 수도를 끊을 때까지 쿠웨이트에 남아 있었다는 \'괘씸죄\'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듬해인 1991년 1월 15일까지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승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대사관의 거듭된 요청에도 철수를 않겠다고 고집하던 우리 기업 직원들도 바그다드 상황이 위험해지자 하나 둘 탈출하기 시작했다.

\'디데이(D-day)\'인 1월 15일이 가까워지면서 바그다드의 우리 대사관도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서울에서는 최 대사에게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1월 11일 전세기로 바그다드를 뜬다는 정보가 있으니 같이 타고 나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는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인들이 그동안 우리를 인질로 잡지 않았는데 미국 비행기를 타고 떠나면 한패로 생각할 것 같았다"면서 "바그다드 항공의 암만행 표를 확보했고 여의치 않으면 육로로 가겠다고 보고했더니 서울에서는 답이 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최 대사는 15일 항공편으로 무사히 암만으로 출발, 사지를 벗어났다. 최 대사는 그 해 말까지 서울에서 이라크 대사직을 유지하다가 다음해 튀니지 대사로 부임했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쌓아온 경제 협력이 수교 결정의 토대가 됐다"며 "이라크 정부는 우리 기업이 참여한 공사는 입찰도 형식적으로 할 정도로 그 능력을 신뢰했다"고 말했다.

또 바그다드 전장에서 보낸 3년에 대해서는 "사실상 전쟁터에서 죽다 살아왔는데 정부에서는 그 고생을 알아주거나 마땅한 보상이 없었다"고 서운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 최봉름 전 대사

1961년 외무부에 들어온 이래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이라크, 튀니지 등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공관을 두루 거쳤다.

특히 1988년 바그다드 총영사로 부임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데 역할을 했다. 초대 이라크 대사로 있으면서 걸프전 당시 우리 동포들과 기업들의 안전한 탈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평양(79) ▲ 서울대 ▲ 미국대사관 1등 서기관 ▲ 국제기구 과장 ▲ 코트디부아르 대사 ▲ 국회의장 의전비서관 ▲ 바그다드 총영사·이라크 초대 대사 ▲튀니지 대사 ▲ 대전대 초빙교수

airan@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3/04/22 07:01 송고
출처 : http://www.yonhapnews.co.kr/special/2013/04/20/1438010000AKR201304200575000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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