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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외교史전시관 설립 결심 /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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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2-08-16 17:18 조회2,1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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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수요 초대석 게재 일자 : 2012년 08월 14일(火)
“‘6·25는 북침’ 젊은층 인식에 충격… 외교史전시관 설립 결심”
외교사료·골동품 5000점 기증 - 권영민 前 독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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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민 전 주독대사가 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에서 “자라나는 미래의 주역들이 한국사료전시관의 외교사료를 보면서 한국의 오늘을 있게 한 우리 민족의 저력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김연수 기자 nyskim@munhwa.com
권영민(66) 전 주독대사가 평생 모은 외교사료와 골동품 등 5000점을 기증해 만들어지는 한국외교사전시관이 오는 24일 충남 아산시 배미동 환경과학공원에서 개관한다.

이 전시관은 아산시가 권 전 대사로부터 외교사료 등을 기증받아 운영하게 되는데 일반에는 무료로 공개될 예정이다. 전직 외교관이 모은 외교사료 등으로 독립적인 외교사전시관이 만들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전시관에는 구한말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주요 외교문서와 역대 대통령들의 연설문, 각국 총리와 외교장관 등이 선물한 기념품과 각국의 주화 등이 선보인다.

특히 대통령이 된 독립운동가 이승만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1919년 미국에서 발행한 공채(公債), 월탄 박종화 선생이 19세 때 쓴 3·1독립선언서 원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4년 독일 방문 때 파독(派獨) 광부 앞에서 했던 연설문, 독일 광부들의 랜턴과 수통 등 귀중한 역사자료 등이 많이 포함돼 있다.

기증품 중에는 외교부 1년 후배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제공한 한국과 유엔 관련 사진 2000점도 포함돼 있어 주목을 끈다.



인터뷰=이미숙 국제부장

8월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9일 오후 권 전 대사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을 방문했을 때, 그는 외교사전시관에 기부할 물품 정리로 정신이 없었다. 그의 아파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외교박물관이었다.

아파트 입구와 거실, 베란다엔 40년 가까운 외교관 생활 중 모은 유럽의 골동품과 유화, 조각상, 고가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작은방과 안방에는 사진첩과 서적, 기념품들이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15세기 유럽에서 제작된 시계와 천사상, 1800년대 제작된 덴마크산 의자,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제작된 시계장식과 테이블, 유화 등 골동품이 수도 없이 많았다.

이 중 대부분은 외교사전시관에 기증될 예정인데 권 전 대사는 37, 38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 조수도 없이 홀로 이방 저방을 오가며 자료 선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평생 모은 외교 사료와 기념품을 내놓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이 같은 작업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주독대사를 마친 뒤 귀국해 2006년부터 1년간 제주평화연구원 원장 대리로 일했는데 그때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즈음 ‘미군의 북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뉴스 보도를 접했는데 평생 대한민국을 위해 해외를 뛰어다닌 내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지인들에게 ‘왜 젊은이들이 이렇게 왜곡된 역사관을 갖고 있는가’ 물었더니 ‘고등학교에서 역사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아 또 한번 놀랐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역사교육을 안 받았다면, 이를 가르치지 않은 기성세대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국외교사를 제대로 알 수 있게 하는 전시관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후세에 역사교육을 제대로 시키기 위해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되돌아보면 나 자신도 6·25 이후 반공멸공 분위기에서 살아온 세대입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사상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외교관이 돼 유럽에서 일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알게 됐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도 목격하면서 확실한 국가관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굴곡진 현대사의 아픈 기억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 과거의 조국을 알리고, 우리의 발전상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이 전시관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2006년 처음 구상을 하신 뒤 6년 만에 결실을 맺는 것이네요.

“구상은 그때부터 했지만, 실행은 2007년 2월 외교부 퇴임 후부터 했습니다. 내 고향(충남 아산시 선장면)에서부터 역사를 바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해 온양 인근에 갖고 있던 땅 4500평을 기부채납하려 했는데 아산시 측에서 개발이 안 된 외진 곳에 위치해 곤란하다며 시 소유의 땅에 건립하자고 제안해 수정이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산시내 소규모 폐역사를 재활용하는 프로젝트에 전시관을 넣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으나 시장 등이 바뀌면서 폐역사 재활용 사업의 경제성 등을 이유로 무산됐습니다. 여러 논의 끝에 아산시 배미동 환경과학공원 내에 한국외교사전시관(157㎡)을 건립하기로 확정된 것입니다.”

―외교전시관에 기증할 물품은 어떻게 선별했는지요.

“제가 평생 모은 외교 관련 서류와 자료, 문서 등 5000여 점으로 구성됐는데 구체적 목록은 이미 아산시 측에 넘겼고, 그 목록 중 아산시 측에서 선별한 것을 중심으로 기증하게 됩니다. 제가 평생 모은 자료 중 철저히 공적인 자료, 역사를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자료를 중심으로 기증할 것입니다. 다만 제가 외교의전을 할 때 입었던 복장과 넥타이 그리고 각국으로부터 받은 훈장은 외교의 의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기증품에 포함하기로 했습니다.”

―사료는 어떻게 모았습니까.

“1969년 외교관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모았는데 국내외의 지인들이 준 것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이승만 박사가 1919년에 발행한 10달러 공채인데 이것은 유명환 전 외교장관이 기증한 것입니다. 당시 일본도 비슷한 공채를 팔았는데 일본인들은 전후 재무성 등에서 대부분 환전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10달러 공채를 샀던 재미교포들은 해방 후 이것을 모두 청와대로 보내줬습니다. 1979, 1980년 제가 청와대에서 최규하 당시 대통령을 보좌할 때 10달러짜리 공채가 한 박스 가득 들어 있던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공채를 보유했던 교포들은 그것을 환전하지 않고 청와대로 보내면서 ‘한국을 잘 다스려 다시는 이웃 국가에 국권을 빼앗기지 말아 달라’는 편지를 썼더군요.”

권 전 대사가 보여준 10달러짜리 달러 공채에는 ‘Republic of Korea’라고 쓰여 있는데 그는 이에 대해 “‘Republic of Korea’라는 명칭은 19세기 말부터 쓰였고, 이 박사도 공채 발행 때 이 명칭을 그대로 썼다”고 설명했다.

―외교사료를 수집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을텐데.

“우리나라에는 사료에 대한 귀중함을 아는 이들이 적은 편인데 저는 1969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외교 관련 서류 하나하나를 버리지 않고 모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모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리를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외교사료 얘기를 하다가 그는 작은방에서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들고 나와 “이것은 1900년대 초 그려진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인데 웃는 표정이라고 해서 공식초상화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순신 장군이 생전에 쓰던 도장이 찍힌 표구도 보여줬다.

특히 그의 방 한켠에 있던 박스엔 파독 광부들이 썼던 모자며 랜턴, 수통이 들어 있어 유독 파독 광부 관련 물품에 애정을 들인 이유를 물었더니 “주독대사로서 파독 광부들의 희생을 보면서 애처로웠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을 했다.

“주독대사로 있을 때 독일 주재 교민들을 많이 만나며 자료를 모았는데 특히 간호사 출신으로 파독 광부와 결혼한 재독교포 윤행자 씨가 남편이 쓰던 물품을 기증해 줬어요. 1960년대 독일로 간 한국 광부들은 독일 광부들이 쓰던 수통이나 랜턴을 그대로 썼지요. 이것은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시작할 때 우리 젊은이들이 서독의 탄광에서 흘린 피땀을 증언해주는 소중한 역사적 물품입니다. 1964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처음 독일에 갔을 때 광부들 앞에서 눈물의 연설을 했는데 이제 이 광부들의 장비는 그때의 역사를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아산의 외교전시관은 어떻게 운영됩니까.

“저는 기증자일 뿐 모든 운영은 아산시에서 맡아 공적으로 관리될 것입니다. 제 손을 떠나는 이 사료들의 소유주는 아산시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다른 골동품들도 앞으로 다른 기관들에 모두 기증할 생각입니다. 두 아들은 이제 모두 독립해 잘 살고 있어 유산으로 남겨줄 필요는 없기 때문에 다른 물품도 사회기관에 기부할 생각입니다.”

―최근 펴낸 회고록 ‘권대사, 자네 큰 실수했네’에서 스스로를 ‘실패한 외교관’이라고 규정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 자신을 실패한 외교관으로 규정한 것은 대한민국을 위해 더 큰 기여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2007년 외교부 퇴임사에서도 전 스스로를 실패한 외교관이라고 했습니다. 40년 가까이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후배들을 많이 질책했는데 막상 퇴임할 때 생각해보니 외교관으로서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실패한 외교관’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데.

“1969년 제가 외교부에 들어갈 때 북한이 있었습니다. 1970, 1980년대 외교관으로 한창 일할 때 외교관들은 모두 북한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그래도 북한을 상대해주는 것은 불쌍해서 봐주는 차원에서였지 북한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북한은 국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나 외교관으로 38년을 일한 뒤에도 북한은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고 있으니 저 자신을 실패한 외교관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남북한 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인류 보편의 가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여전히 남북 갈등이 지속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외교계의 원로로서 한국외교의 미래에 대해 제언을 하신다면.

“우리 외교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최우선시하는 외교가 돼야 합니다. 중국 경제가 거대해질수록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는데 향후 한국외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이니셔티브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국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비무장지대(DMZ)에 후진국 원조를 위한 국제기구를 만들어 반 총장이 유엔 퇴임 후 이끌 경우 우리의 외교적 영향력이 강화될 것이고, 중국 또한 한국을 만만하게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반 총장이 퇴임한 뒤 이 같은 기구를 만들어 아프리카 등지의 개발도상국 정상들을 매년 초청하고 이 국가들을 지원하는 작업을 해나가면 중국이 한국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될 것이고 미국은 물론, 일본이나 러시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musel@munhwa.com


<출처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814010335321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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