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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법전' 든 대사관..유족 恨 풀어줬다/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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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2-02-24 10:21 조회3,2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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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법전\' 든 대사관..유족 恨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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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여객기(자료사진)

남편 사고死에 배상도 못받아..부인 탄원 듣고 법리공방
두달여 다툼끝 \'명예회복\'..김승호 前주리비아 대사 회고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정묘정 기자 = "정말 억울합니다. 우리 남편의 영혼을 달래주세요."
1995년 6월 초, 주(駐)리비아 대사관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2년여 전 리비아에서 숨진 남편의 죽음을 뒤늦게 배상해달라며 부인이 보낸 통한의 서한이었다.

비운의 주인공은 1992년 12월 리비아에서 발생한 여객기 추락사고로 숨진 S은행 소속의 임 모(당시 43세) 과장.

국내 D 건설사의 리비아 공사 현장에 파견돼 근무 중이던 임 과장은 자신을 만나러 튀니지 제르바로 온 가족들을 상봉하려고 비행기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

당시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임 과장이 탑승한 리비아 아랍항공 소속 보잉 727 여객기는 리비아 동부 도시 벵가지를 떠나 수도 트리폴리로 향하던 중 트리폴리 남동쪽 약 60km 지점에서 군용기와 충돌했다. 미확인 소문이지만 리비아 최고지도자인 무아마르 카다피가 이 여객기에 정적(政敵)이 타고 있다는 이유로 격추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불의의 사고로 임 과장을 포함한 탑승객 157명은 전원 사망했다. 리비아 역사상 최악의 항공기 사고였다. 문제는 다른 탑승자들의 유가족은 대부분 리비아 정부로부터 2만 달러 가량의 배상금을 받았지만 임 과장의 유족만 배상대상에서 제외된 것이었다.

임 과장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된 탑승권을 사용했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다. 당시 리비아에 진출한 국내 건설사 사무소는 벵가지와 트리폴리를 왕복하는 일이 잦아 특정인 명의로 비행기표를 일괄 구매해 무작위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항공사 측은 탑승자 신원을 따로 확인하지도 않았다.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막상 사고가 발생하자 항공사 측이 배상의무를 피하기 위해 임 과장을 불법 탑승객으로 몰아간 것이었다.

심지어 리비아 정부와 항공사 측은 임 과장이 \'불법 체류자\'라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당시 리비아에서는 외국인의 은행업 자체가 법으로 금지돼 있었고 임 과장은 외국계 은행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또 임 과장이 파견 근무 중이던 D 건설사가 유족을 대신해 손해배상 포기 각서를 리비아 정부에 제출한 것도 배상 불가의 이유였다. 배상 문제가 불거져 리비아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향후 건설사업 수주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D 건설사는 따로 유족에게 일정액의 배상금을 전달한 뒤 손해배상 포기각서를 리비아에 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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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한 여객기 파편(자료사진)

이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이역만리에서 안타깝게 숨진 고인에게 불법탑승자에다 불법체류자라는 불명예까지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족들은 임 과장의 명예를 회복하고 한(恨)을 풀기 위해서라도 리비아 정부로부터 정식 배상을 받아내겠다며 정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김승호 당시 주리비아 대사는 대사관 직원들에게 즉각 법률검토를 지시했다. 리비아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려면 분명한 법적 근거와 철저한 논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리비아 측 주장은 허점 투성이였다. 항공사 측은 탑승자의 신원을 꼼꼼히 확인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이 리비아 국내법에 명시돼 있었던 것이다. 대사관은 항공사가 이러한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상황에서 임 과장의 일방적 과실을 주장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고인이 불법체류자였다는 주장도 논리에 어긋난 면이 있었다. 당시 리비아 국내법이 외국인의 은행업을 금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리비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 업무를 금지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게 타당했다. 임 과장의 업무는 S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은 D 건설사의 사업감독이었으므로 리비아에서 직접 은행업을 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D 건설사가 리비아 정부에 유족을 대신해 손해배상 포기각서를 제출한 것 역시 법적인 효력이 없었다. 본인과 법정 대리인 외에는 손해배상 포기각서를 작성하거나 제출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사관 측은 리비아 정부에 이런 법적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하며 임 과장의 사망에 대한 배상 책임이 있음을 주지시켰다. 하루 아침에 사고로 남편을 잃고 자녀를 홀로 키워야 하는 임 과장 부인의 딱한 사정을 설명하며 담당공무원과 변호사 등의 \'감성\'에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비아 정부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설득의 과정은 그야말로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낮 시간대에는 일상적 업무를 처리하고 늦은 밤까지 관련 법령과 반박 논리를 연구하는 시간이 두 달 가까이 계속됐다. 바쁜 시간을 쪼개 리비아 외무성을 찾아갔지만 면전에서 면담을 거절당하는 수모도 수 차례 겪어야 했다.

대사관 관계자들은 물러서지 않고 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끈질기게 설득과 압박을 계속했다. 반박논리가 약했던 리비아 정부는 결국 두 손을 들고야 말았다. 우리 측의 법률논리가 워낙 치밀하고 빈틈이 없다보니 법리다툼에서 수세에 몰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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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한 여객기(자료사진)

8월 중순 리비아 정부는 드디어 우리 측의 입장을 수용하겠다는 서한을 보내왔고 며칠 뒤 우리 대사관 관계자와 리비아 담당공무원, 변호인이 입회한 가운데 임 과장의 유족에게 2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했다.

두달 넘도록 이어져온 눈물겨운 \'명예회복 투쟁\'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유족은 임 과장의 억울함이 풀린데 대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번 사례는 우리 재외공관이 억울한 상황에 처한 재외동포 유족의 탄원을 외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법률적 조력을 제공해 \'구제\'에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당시 김 전대사의 지휘에 따라 법령을 분석하고 리비아 정부와의 실무 협상을 담당했던 주리비아 대사관의 이기철 1등 서기관은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그해의 \'최우수 외교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재외공관이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재외국민 보호 의무에 소홀하다는 국민적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국민을 섬기는\' 재외공관의 상(像)과 역할 모델을 보여준 상징적 케이스로 꼽혔기 때문이다.

현재 주 네덜란드 대사인 이 대사는 당시를 회고하며 "가장 참지 못했던 일은 해외에서 우리 국민이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고 가장 보람있던 일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우리 국민을 도와드리는 것"이라며 "해외에서 우리 국민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특권이라는 생각을 아직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생활에서 어려움이나 문제에 직면한 우리 국민들에게는 재외공관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자 \'쉼터\'가 된다는 의미다.

이 사건의 해결을 총괄 지휘했던 김 전 대사는 1979년 대사 대리로 부임했던 아프리카 모리타니아에서 원양어선단을 돕는 독특한 영사활동을 펼치면서 또 한번 진가를 보여줬다.

당시 모리타니아의 항구도시 누와디보 연안은 양질의 참치가 많이 잡히는 \'황금어장\'으로 유명했던 터라 한국 원양어선단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한번 고기잡이에 나서면 1~2개월씩 현지에 머무는 어선단에게 대사관은 든든한 안식처였다. 교민 한명 없는 이역만리 모리타니아에서 어선단과 대사관은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끈끈함으로 뭉쳤다. 대사관 행사가 있을 때면 선원들을 모두 초청해 귀한 한국음식을 나눠먹으며 정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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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前 주리비아 대사
(서울=연합뉴스) 정묘정 기자 = 김승호 전(前) 주리비아 대사가 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992년 12월 발생한 리비아 여객기 사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1.12.5myo@yna.co.kr

원양어선단은 모리타니아 정부와의 입어교섭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도둑 고기잡이\'를 하다가 납포되는 일도 잦았다. 그때마다 면회를 가는 것도 김 전대사의 몫이었다.

어선단이 명백히 현지법을 위반한 탓에 대사관이 석방 교섭에까지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가끔 대사관이 모리타니아 정부의 불법 조업어선 단속 계획을 미리 파악해 어선단에 슬쩍 알려주는 \'동포애\'를 발휘하기도 했다.

◇ 김승호 전 주리비아 대사 = 1961년 외무부에 들어온 뒤 주스웨덴 1등서기관과 주모리타니아 참사관ㆍ주프랑스 참사관ㆍ주코트디부아르 대사ㆍ주리비아 대사ㆍ주모로코 대사 등을 거치며 전방위적인 외교 경험을 쌓았다.

특히 1970년대 북한과의 치열한 외교전(戰)이 벌어졌던 모리타니아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대(對)아프리카 외교의 선봉에 섰다.

퇴임 후에는 연세대와 이화여대ㆍ한국외국어대ㆍ한양대 등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힘써왔으며, 현재는 연세대 특별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외교관 시절 쌓은 문화와 역사ㆍ정치 등에 관한 식견을 바탕으로 나는 천재- 달리의 생애와 예술 과 아랍 중개자, 중동의 미래와 전망 등의 저서를 펴냈고, 번역서로는 아들아,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라 와 국화와 칼 등이 있다.

▲전남 보성(74)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파리1대학 소르본 국제정치학 박사 ▲주스웨덴 대사관 1등 서기관 ▲여권3과장 ▲주모리타니아 참사관 ▲주프랑스 참사관 ▲기획조정관 ▲주중앙아프리카 대사 ▲주코트디부아르 대사 ▲주리비아 대사 ▲주모로코 대사

저작권자(c)연합뉴스. . 2011/12/05 08:00 송고
* 출처(연합뉴스) : http://www.yonhapnews.co.kr/special/14380100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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