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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경수로 노형결정 '피말리는' 막전막후/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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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2-02-24 10:18 조회2,7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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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경수로 노형결정 \'피말리는\'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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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09-미북경수로 회담
(서울=연합뉴스) 미북 경수로 회담을 타결한 토마스 허바드 미 국무성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부장. [TV 촬영] 1995.6.13 (본사자료)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동진 前주영대사 회고.."한국형 경수로를 관철하라" 훈령
北 벼랑끝 전술로 버티기..제네바합의 통째로 날아갈 위기도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정묘정 기자 = "한국표준형 경수로를 관철하라".

1994년 10월21일 북미 양국이 서명한 역사적 \'제네바 합의\'는 한국 외교에 찾아온 \'위기\'였다. 여기저기서 북미간 핵 담판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된 것 아니냐는 비판여론이 빗발쳤다. \'통미봉남\'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는 곧바로 경수로 지을 돈은 정작 우리가 대면서 왜 협상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느냐는 질타로 이어졌다.

며칠 뒤 경수로기획단장을 맡으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아든 최동진 외무부 차관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코너에 몰린 정부는 국내적으로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이는 외교적으로 \'난제중의 난제\'였다.

하루빨리 한국이 전면에 나서 경수로 협상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발등의 불이었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컨소시엄이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제네바 협정문과 북미 간 양해사항을 사실상 뒤엎어야 가능한 문제였다. 자칫 제네바 합의가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핵심 관건은 경수로 노형(爐型) 결정과 국제컨소시엄(KEDO) 구성이었다. 이는 큰 틀에서 경수로 건설의 중심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쉽게 말해 미국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미국형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한국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한국형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으로 변경하는 \'대전환\'이었다.

고심하던 최 차관보는 제네바 합의를 주도한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찾아갔다. 11월9일 제네바 합의내용 설명차 서울에 온 갈루치를 경수로기획단장 내정자 자격으로 만나 설득을 하려는 것이었다.

최 차관보는 갈루치 차관보에게 "제네바 합의에서 미국이 국제컨소시엄을 주도하고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것을 우리 국민은 도저히 동의하지 못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갈루치 차관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일단 일본을 포함한 3자 협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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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06-경수로기획단 발족
(서울=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김덕부총리겸 통일원장관등 관계자들이 남북대화사무국에서 경수로사업 지원기획단 현판을 건후 악수하고있다. 왼쪽부터 최동진단장, 공노명외무장관, 김통일부부총리, 송영대 통일원차관. 1995.1.23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3국 대표가 미국 워싱턴 D.C에서 회동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1월17일. "북한에 제공하는 경수로는 반드시 한국표준형이어야 합니다". 이틀간 열린 회담에서 최 차관보는 명시적으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주창하고 나섰다. 경수로 노형을 미국 CE(Combustion Engineering)형이나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형이 아닌 한국표준형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북한과 \'역사적 담판\'을 지었던 갈루치 차관보로서는 당혹스런 표정이었다. 제네바합의를 겨냥한 막후 협상과정에서 이미 북한 측에 "미국이 주도하겠다"고 수차례 약속한 터였다. 결국 워싱턴 회동은 결렬됐고 3국 대표는 다음달 다시 2차회의를 하기로 했다.

한달 가까이 지나 12월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모 호텔에서 3국 대표는 다시 얼굴을 맞댔다. 그 때 갈루치는 최 차관보에게 \'Cosmetic Change\', 즉 \'그럴 듯한 포장\'을 제안했다. 제네바 합의문이 "미국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은 미국이 북한의 주접촉선"이라고 못박고 있어 이를 뒤집을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다만 형식은 \'미국\', 내용은 \'한국\'으로 교묘히 포장해보자는 얘기였다.

쉽게 말하면 외견상의 주계약자는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로 하고 실제 사업은 한국기업(한국전력)이 주도하는 시나리오로 가자는 것이었다. 최 차관보는 그 자리에서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한국이 경수로건설 비용의 상당부분을 부담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주계약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국민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미국이 좀처럼 입장을 바꾸려하지 않자 최 차관보는 협상구도를 바꾸는 묘안을 짜냈다.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또 다른 동맹파트너인 일본을 끌어들여 \'2대 1\'의 구도를 만드는 전략을 꾀한 것이다. 최 차관보는 회담 이틀째 아침, 일본측 대표인 엔도 데쓰야(遠藤哲也)에게 조찬을 함께 하자며 불러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이 70 대 30의 비율로 경수로 건설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주계약자가 되면 국내적으로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내놨다.

미국으로부터 30%의 비용부담 요구를 받고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던 일본은 결국 우리 측에 동의했다. 일본이 한국 쪽으로 넘어가자 결국 미국도 마지못해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 국내 여론을 활용한 집요한 설득과 완강한 버티기 끝에 최 차관보의 주장은 관철된 것이다. \'최고집\'이라고 별명도 붙은 것도 이 당시였다.

3국 대표는 샌프란시스코 회동을 마무리하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 협정문에 경수로 노형을 \'한국표준형 경수로\'로 정하고 북한에 한국표준형 1000㎿(메가와트) 2개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의 합의초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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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63-한국형 경수로 관철 시민 궐기대회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한국형 경수로 관철 시민 궐기대회가 국립극장에서 열린 가운데 참가시민들이 북한의 핵합의 파기음모를 규탄하는 구호를 제창하고 있다. 1995.4.4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KEDO 구성과정에서는 사무총장 자리는 미국에 \'양보\'했다. 다만 집행이사회에 참여하는 3국 모두가 거부권을 갖게 함으로써 내용상으로는 사무총장의 권한을 상당폭 제한했다. 초대 사무총장은 스티븐 보즈워스 국무부 수석 부차관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인 1995년 3월9일 3국 대표는 미국 뉴욕에서 회동, KEDO 공식 출범을 위한 협정문에 공식 서명했다.

큰 고비를 넘겼으나 이제는 시간이 문제였다. 제네바 합의문은 \'미국은 국제컨소시엄을 대표해 (제네바) 합의문 서명후 6개월내에 북한과 경수로 제공을 위한 공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고 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 KEDO는 3국대표가 모여 서명만 했을 뿐, 실질적 진용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빈껍데기\'였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일단 미국이 나섰다. 북한과 경수로 공급협정 협상에 착수한 것이다. 다만 모든 사항을 3국이 협의해서 결정한다는 전제하에서 협상의 전권을 위임받았다.

같은 달 25일 독일 베를린을 무대로 북미는 협상테이블에 앉았다. 정식명칭은 제3차 경수로 전문가회담 1차회의. 미국 측에서는 게리 세이모어 국무부 핵비확산담당과장, 북한 측에서는 김정우 대외경제부위원장이 수석대표로 나왔다.

초반부터 양측은 마주 달리는 기관차의 궤도에 올라선 듯이 정면 충돌했다. 세이모어 대표가 한미일 3국 대표의 합의사항을 근거로 경수로 노형은 \'한국표준형\'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정우 대표는 "한국이 들어가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고 펄쩍 뛰었다. 김 대표는 "한국형은 결함도 많고 기술적으로도 아직 확립되지 않았는데, \'독(毒) 묻은 당근\'을 먹으라는 것 아니냐"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CE형이든 웨스팅하우스형이든 미국형 경수로를 달라는 주장이었다. 굳이 한국이 참여하려면 미국이 주도하는 조인트 벤처에 들어와 건설만 담당하라는 게 북한의 입장이었다.

이에 한ㆍ일 양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세이모어 대표는 "반드시 한국표준형이어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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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63-한·일 대북협상 전략회의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한국의 최동진 경수로기획단장(오른쪽)과 일본의 엔도 데스야(遠藤哲也) 경수로대사가 외무부에서 한·일 대북협상 전략회의를 갖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1995.5.10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협상이 제대로 풀리지 않자 북한 측은 외무성 담화를 통해 특유의 협박전술을 동원했다. 담화는 "미국이 자꾸 그렇게 나오면 제네바 합의가 깨져도 우리로서는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는 고강도의 압박성 메시지였다.

평행선을 달리던 북미는 베를린 회담을 잠정 휴회했고, 한미일 3국 대표는 다시 4월7일 뉴욕에서 긴급회동했다.

미국 측은 초조해하는 분위기였다. 제네바 합의의 성과와 직결된 경수로 협상이 중대한 난관에 봉착한 탓이다. 갈루치 대표는 슬그머니 \'Cosmetic Change\'를 하자는 타협책을 들고 나왔다. 최 차관보는 또다시 버텼다. 한국표준형 경수로를 채택하지 않고는 한국 내 여론을 설득할 수 없다는 논리로 쐐기를 박았다.

그러는 사이 북한 외무성은 또다시 성명을 내고 "협상을 깰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놨으나 한미일의 기존 입장을 바꾸지는 못했다.

양측의 입장이 출구 없는 대치를 이어가던 끝에 북한은 결국 4월20일 회담장을 박차고 나섰다. 제네바 합의문이 경수로 공급협정 계약시한으로 설정한 6개월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북한은 "5MW 원자로의 연료봉을 재장전하겠다", "제네바 협상을 깨겠다"는 통첩까지 했다.

최 차관보는 순간 북한의 이 같은 행동을 \'협박\'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미국 측은 협상이 완전히 깨진 것 아니냐고 전전긍긍했으나 북한을 오래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최 차관보로서는 상황이 파국으로 가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그 판단은 옳았다. 국제사회의 제재논의가 시작되고 대북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오래지 않아 북한은 다시 미국과의 대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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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57-경수로에 쏠린 눈
(서울=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대북 경수로 문제와 관련 보도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최동진 경수로기획단장과 로버트 갈루치 미 핵대사, 엔도 데쓰야 일본대사가 3국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1995.5.10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1995년 5월1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양국의 차석대표인 북한 김계관 차석대표와 토머스 허바드 차석대표가 만났다. 초반부터 한치의 양보 없는 줄다리기가 펼쳐졌다. 북측은 돌아가는 비행기편을 예약했다며 또다시 벼랑끝 전술을 펴며 미국을 압박했다. 미국은 초반에 움츠러들었으나 "겁먹지 말라"는 한일의 \'훈수\'를 듣고는 강경한 대응태도를 유지했다.

이 같은 밀고 당기기가 한달 가까이 지속되던 끝에 우리 측은 절묘한 묘수를 찾아냈다. 한국표준형 경수로라는 것을 직접 표기하지 말고 기술적으로 풀어쓰는 쪽으로 유연성을 발휘한 것이다. 이에 따라 \'1000㎿(메가와트) 용량의 두개의 냉각제 유로(Coolant loops)를 가진 가압형 경수로\'로서 \'원래 미국 원설계에 의한 것이지만 이후 기술적으로 개량ㆍ개발돼 현재 생산되고 있는 것\'이며 \'KEDO가 선정한 것\'이라는 표현이 탄생했다. 이 같은 노형은 전세계에서 한국표준형밖에 없었다.

최 차관보는 원자력연구소와 한전 기술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 같은 노형이 \'한국표준형\' 밖에 없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에 따라 6월13일 쿠알라룸푸르에서 허바드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담당 부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교부 부부장이 북미 간 합의사항에 공식 서명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한국표준형 경수로 채택을 서둘러 \'확정\'짓는 것이었다. 정부는 미국과 일본 측에 전갈을 넣어 북미가 공식서명한 당일인 13일 KEDO 집행위원회를 열어 노형을 결정하기로 \'밀약\'했다. 때마침 갈루치 차관보는 윈스턴 로드 국무장관을 수행해 서울에 와있었다. 일본에 있는 엔도 데쓰야 경수로 대사에게는 최 차관보가 직접 연락을 넣어 서울로 은밀히 불렀다.

이로써 13일 저녁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북미가 경수로공급 계약 합의문에 공식 서명하고, 같은 시각 서울에서는 한미일 3국 대표가 KEDO 집행위원회 임시이사회를 열어 경수로 노형을 한국표준형으로 결정했다. KEDO 집행위는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주계약자를 한국전력으로 못박았다.

이처럼 경수로 노형을 둘러싸고 숨 가쁘게 전개됐던 복잡한 게임은 결국 한국의 판정승으로 결말이 났다. 대북 경수로 공급이 \'미국 중심\'에서 \'한국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이후 긴 우여곡절 끝에 한국표준형 경수로를 정한 KEDO와 북한간 \'경수로 공급협정\'은 제네바합의 14개월만인 1995년 12월에 공식 서명됐다.

경수로는 1997년 8월 함경남도 신포에서 부지 착공을 시작으로 건설공사가 본격화됐으나 2002년 북한 우라늄 농축개발 의혹과 그에 따른 북한의 NPT(비확산조약) 탈퇴로 제2차 북핵 위기가 터지면서 제네바합의 12년만인 2006년 5월 공식 종료됐다. 북핵해결의 \'상징물\'이었던 경수로가 국민적 부담만 지운 채 \'고철덩어리\'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 직후 한국표준형 경수로를 노형 결정을 둘러싼 외교적 교섭은 국내 자존심과 국가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외교의 성공작\'으로 평가된다. 특히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경수로 제공문제가 다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국면에서 이번 협상이 남긴 교훈은 여전히 살아있다. 북ㆍ미의 복잡한 줄다리기 과정에서 한국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려면 \'창의적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 주는 사례가 됐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최동진 전(前) 주영국 대사 = 외유내강형으로 꼼꼼한 일 처리에다 영어와 일어도 능통한 대표적인 협상 전문가다.

1960년 외무부에 첫발을 들인 후 주(駐)일본 참사관과 본부 아주국장, 주영국 공사, 주케냐 대사, 주스웨덴 대사, 주영국 대사 등을 역임하며 전방위적인 외교 경험을 쌓았다.

아주국장 시절 한일 경협차관과 일본 교과서 문제 등에서 탄탄한 교섭 능력을 발휘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일본 정부로부터 처음으로 유감 표명과 교과서 수정 약속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1995년 경수로 기획단장을 맡아 기지 넘치는 협상 전략으로 한국 표준형 경수로를 관철해낸 것은 지금까지도 \'외교의 성공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퇴임 후에는 인제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외교분야 후학 양성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경기 시흥(76) ▲서울대 정치학과 ▲주일본 참사관 ▲아주국장 ▲주영국공사 ▲주케냐 대사 ▲주스웨덴 대사 ▲제1차관보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장 ▲주영국 대사 ▲국제해사기구(IMO) 총회의장

저작권자(c)연합뉴스. 2011/10/24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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