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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페루 日대사관저 인질극 '공포의72시간'/이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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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2-02-24 10:11 조회1,9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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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페루 日대사관저 인질극 \'공포의72시간\'

좌익 게릴라들 난입..이원영 대사 인질로 잡혀
"30분에 한명씩 죽인다" 협박..우여곡절끝 극적석방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정묘정 기자 = "쾅..쾅..쾅..탕탕탕탕탕!"
파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귀청을 뚫는 엄청난 폭음, 이어지는 수십발의 총성. 놀란 여성들의 비명이 이어졌고, 칵테일을 들며 담소를 나누던 각국 대사와 수백 명의 손님은 아연 공포감에 휩싸인 채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AK소총과 수류탄으로 중무장한 게릴라들이 파티장에 들이닥쳤다.

1996년 12월17일 저녁, 평화롭던 페루의 수도 리마 한복판에서 일어난 주페루 일본 대사관저 인질극의 서막이다.

20세기 대표적 인질구출 작전의 하나로 기록된 이 사건은 늘 테러의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외교관의 숙명을 새삼 일깨워주는 사례로 꼽힌다.

◆ 무장게릴라 파티장 난입..요인 700여명 인질 = 이원영 주페루 한국대사가 아키히토(明仁) 일왕 탄신 기념 연회가 열리는 일본 대사관저로 떠난 시각은 오후 7시40분께.

당초 파티 시작은 오후 6시였으나 소베로 수산장관과의 오징어 선단 입어권 교섭 논의가 길어지면서 출발이 늦었다. 부부동반으로 초청됐으나 수산장관과의 면담이 늦어져 다행히 부인은 동행하지 않았다.

이 대사를 태운 승용차는 20여 분 뒤인 8시께 리마 시내 중심가인 산 이시드로에 위치한 일본 대사관저에 도착했다. 파티장이 마련된 관저 뒤뜰 정원에 도착해보니 수백 여명의 인사들이 칵테일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친 이 대사는 아오키 모리히사(靑木盛久) 일본 대사에게 인사를 한 뒤 외국사절들과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사이 프란시스코 투델라 페루 외무장관이 파티장에 들어섰다. 그때 갑자기 관저 밖에서 폭음과 함께 총성이 울려 퍼지고 무장게릴라 14명이 관저에 난입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게릴라들은 "엎드려! 움직이면 쏜다. 우리는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단원이다. 해치지 않을 테니 지시를 따르라"고 스페인어로 외쳤다. 이 대사를 비롯한 손님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불안과 공포 속에서 잔디가 깔린 바닥에 바짝 엎드려야만 했다. 순식간에 페루 외무장관과 각국 대사, 페루 각료, 정치인들을 비롯한 주요인사 700여 명이 인질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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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을 이송하는 페루 병사들

게릴라군의 관저 난입은 곧바로 격렬한 교전으로 이어졌다. 관저 바깥의 페루 경찰과 군인들이 게릴라군에 대한 사격을 시작했고 게릴라군도 중무장한 화기로 적극적인 응사를 가했다. 게릴라군의 관저난입과 인질확보 작전은 일단 성공했다.

◆ 게릴라 "수감된 지도부와 맞바꾸자" 협상요구 = 게릴라군의 정체는 스스로 밝혔듯이 극좌파인 투팍 아마루 해방운동(MRTA) 소속 단원이었다. 이들이 무모한 인질극을 벌인 것은 페루 정부에 MRTA 지도자 롤란드 폴라이와 동료 400여 명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MRTA 지도부는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1995년부터 추진해온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대부분 수감돼 있었다.

이들은 후지모리 대통령이 일본계이고 페루 정치권과 사회에서 일본 대사관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점을 노렸다. 특히 후지모리 대통령의 최측근인 투델라 외무장관이 관저에 들어간 사실을 확인한 직후 \'작전\'을 감행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당시 파티장에서 식음료를 나르던 웨이터 중 일부가 게릴라군의 첩자였다는 뒷얘기가 있다.

1시간 30분 가까이 계속되던 교전은 밤 10시께 가까스로 멈췄다. 관저 안에 있던 각국 대사들이 확성기를 들고 페루 군대에 사격 중지를 요청한 덕분이었다. 게릴라군은 지역라디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부녀자와 노약자를 석방하겠다"고 통보하고 오후 10시부터 11시 사이 100여 명을 우선 석방했다.

관저를 장악한 게릴라들은 인질들을 외교사절, 일본인, 페루인, 정부각료 등 각 방으로 분산 수용했으며 외교사절들은 관저 2층에 위치한 일본 대사의 침실공간에 가뒀다. 각 방과 복도에서는 기관총과 박격포를 소지한 게릴라들이 곳곳에 배치돼 삼엄한 감시활동에 들어갔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살아나갈 가능성이 크지 않겠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 대사의 머리에는 온갖 비관적 생각이 맴돌기 시작했다. 다행히 게릴라들은 인질을 거칠게 다루지 않았고 대사들에게도 정중히 대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게릴라들은 대사들에게 대사관과의 전화를 허용했다. 이 대사는 당시 대사관 참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신변에 이상이 없다"고 말했으나 옆에서 게릴라들이 감시하는 바람에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게릴라군은 오후가 되자 독일과 캐나다, 그리스 대사를 일차로 석방했다. MRTA 지도부와 대사관저 인질들을 맞바꾸는 협상을 \'중재\'하라는 뜻에서 풀어준 것이었다.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앤서니 뱅상 캐나다 대사는 먼저 나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 대사의 손을 꼭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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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前 주페루 대사
(서울=연합뉴스) 정묘정 기자 = 이원영 전(前) 주페루 대사가 지난 1997년 페루 주재 일본 대사관저에서 벌어진 인질극 당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1.9.14myo@yna.co.kr

◆ "협상불응땐 30분마다 1명씩 죽이겠다" = 그러나 페루 정부는 게릴라군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테러리스트와의 타협은 없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아예 협상에 응할 기미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오히려 관저에 공급되던 전기와 수돗물까지 끊어가며 게릴라군을 압박했다.

초조해진 게릴라군은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30분마다 인질을 1명씩 죽이겠다"고 엄포를 늘어놓으며 벼랑끝 협박전술을 폈다. 이 대사는 당시 "이제 살아서 나가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외국사절들도 극도의 불안과 긴장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또 하루가 지났다. 대사관저 내부의 상황은 이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워낙 많은 인질이 잡혀 있던 터라 식량이 절대 부족했다. 하루 두끼 밖에 제공되지 않아 대사관저에 비축돼 있던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당시 국제적십자사 요원들이 생수와 음료수, 간단한 식량을 관저 안으로 넣어줬으나 그나마도 부족해 식빵 하나를 두 명이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릴라들은 TV를 볼 수 있도록 허용해 밖에서 진행되는 소식을 대충 알 수 있었다. 방송뉴스를 지켜보던 일부 게릴라들은 일부 대목에서 "정확하지 않은 보도를 한다"며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이 대사는 죽을 고비를 맞기도 했다. 갇혀 있던 침실의 인터폰이 울려 무심코 수화기를 든 것이 화근이었다. 인질들 사이에 반란 모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우려한 게릴라군이 이 대사를 의심한 것이었다. 다행히 아오키 대사의 적극적 해명으로 \'결백\'이 증명되기는 했지만 이 대사는 게릴라군이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눈 채 끌고 가던 순간의 공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 \'운명의 시간\'..우여곡절 끝 극적인 석방 = 나흘째 되던 20일, 이 대사에게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게릴라군이 페루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한 대사 3명을 또다시 석방하기로 결정하고 명단을 통보한 것이다. 브라질과 쿠바, 그리고 외교사절단이 자체적으로 정하는 국가였다.

브라질 대사는 남미 최대의 국가라는 점에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쿠바 대사는 허리 통증이 심해 관저생활을 견디기 힘들었고 게릴라들과 이념성향이 같은 국가의 대사라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였다. 나머지 외교사절단이 정하기로 한 국가는 현지 정부에 대한 신임장 제정 순서에 따라 이집트 대사가 뽑혔다.

그런데 \'미스터리\'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대사는 석방 대상이 된 3명의 대사를 찾아가 인사를 나눴는데, 느닷없이 쿠바 대사가 "나는 오늘 나가지 않을 테니, 당신이 대신 나가라"고 뜻밖의 제안을 한 것이었다. 이에 이 대사는 "저 사람들이 당신보고 나가라고 하는데, 내가 왜 나가느냐"고 극구 사양했으나 쿠바 대사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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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02-외무부 대책회의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송영식 외무부제1차관보(오른쪽)가 외무부에서 페루 좌익게릴라들에 의해 억류 중인 이원영 주 페루대사의 안전한 조기 석방을 위해 중남미국 직원들과 대책회의를 갖고 있다. 1996.12.19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 대사는 한동안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평소 안면을 익힌 좌익계 국회의원 디아스 간세코 의원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상의했다. 그러자 간세코 의원은 "내가 한번 얘기해보겠다"고 하면서 게릴라 측과 접촉했다. 결과는 뜻밖에도 이 대사의 석방이었다. 게릴라군은 오후 6시30분께 2층 침실로 올라오더니 "한국 대사가 쿠바 대사 대신 나가라"고 통보했다.

이 대사는 쿠바 대사의 태도가 언뜻 이해되지 않았으나 몇 가지 가능성을 추론했다. 우선 쿠바 대사는 같은 이념성향을 가진 국가의 대사로서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컸다. 오히려 일찍 석방될 경우 본국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그다지 좋게 비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판단했을 것이라는 게 이 대사의 분석이다.

여기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이 대사는 개인적 신앙의 힘도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이 대사는 "군대가 나를 에워쌀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라는 시편 구절을 떠올리며 안전한 석방을 간구하는 기도를 했고, 이를 하나님이 \'응답\'했다는 게 이 대사의 믿음이다. 마침내 이 대사는 20일 오후 8시께 일본대사관저를 빠져나왔다. 인질로 잡힌 지 만 사흘 만이었다.

◆ "대사관저 되돌아가지 마라" 본부 훈령 = 이 대사의 석방은 사실 \'일시 석방\'이었다. 페루 정부 관계자를 만나 게릴라군의 요구 사항을 전달한 뒤 다시 대사관저로 돌아오는 것이 석방의 조건이었다. 이 대사는 이에 따라 페루 정부 측과의 협의를 마치면 곧바로 관저로 되돌아갈 계획이었다. 특히 다른 동료 대사들을 비롯한 수백 명이 여전히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자신만 도망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2차로 석방된 3명의 대사는 이튿날 함께 도밍고 발레르모 교육부장관을 만나 내부 상황을 설명하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엄청난 희생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그러나 교육부 장관은 그 자리에서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는 사이 한국 정부는 이 대사에게 관저로 돌아가지 말라는 본부의 훈령을 내렸다. 이 대사는 고민 끝에 도의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관저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대사관저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페루 군인들은 그의 관저 복귀를 막았고 결국 이 대사는 복귀 계획을 접어야 했다.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리며 리마 시내의 한 호텔에 투숙해온 이 대사는 결국 1997년 3월 3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2년10개월 만에 대사직을 마치고 귀국했다.

악몽과 같은 72시간의 인질극을 겪은 이 대사의 케이스는 외교 일선에서 활약하는 후배 외교관들에게 \'외교관이 어떤 직업인가\'하는 본질적 물음을 던져주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국익 확대와 자국민 보호의 최전선에서 서 있는 외교관들이 현지 외교활동 과정에서 자칫 생명의 위기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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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06596-김영삼 대통령 이원영 주 페루대사 위로
(서울=연합뉴스) 박창기 기자 =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페루 반군에 의한 억류사태속에서도 공관장으로서 의연하게 대처한 이원영 주 페루대사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1997.1.8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인생에서 가장 긴 72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 대사는 1967년 외무부 입부 당시 외웠던 부훈(部訓)을 떠올렸다는 후문이다. \'인화단결(人和團結), 창의연구(創意硏究), 헌신부난(獻身赴難.몸을 던져 어려움을 헤쳐나감)\'이 그것이다.

이중 햇병아리 외교관 시절 전혀 체감할 수 없었던 세 번째 항목이 강렬하게 와 닿았다는 게 이 대사의 고백이다. 이 대사는 "나라를 위해 일하다 벌어진 일인 만큼 최악의 경우가 생긴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 "테러리스트와 협상 없다"..페루 \'양동작전\' = 이 대사를 통해 전해 들은 일본 대사관저 인질 사건은 외교정책 측면에서도 함의가 적지 않다. 페루 정부가 \'테러리스트와는 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관철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다.

페루 정부가 동원한 전략은 한편으로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을 전개하면서, 한편으로 구출작전을 은밀하게 펴나가는 일종의 \'양동작전\'이었다. 페루 정부는 협상을 진행하는 넉 달여간 관저 외부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땅굴을 비밀리에 팠고, 이어 1997년 4월 22일 특수부대 150여명을 전격 투입시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인질 71명을 구출해냈다. 게릴라군은 현장에서 전원 사살됐고, 장장 126일 동안 이어진 희대의 인질극은 막을 내렸다.

이 대사는 이를 \'원칙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접근방식과 수단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만약 페루 정부가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허물고 게릴라군의 위협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을 경우 국가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게 이 대사의 지적이다.

"설사 내가 거기서 살아나오지 못한다 해도 그러한 원칙은 지켜졌어야 했다"는 이 대사의 말은 늘 테러리스트의 위협과 맞닥뜨려야 하는 우리 외교현실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이원영 전 페루 대사 = 1967년 외무부에 입부한 뒤 주(駐)우루과이 서기관과 주볼리비아 참사관, 주상파울루 총영사, 주페루 대사, 주브라질 대사 등을 지낸 대표적인 중남미통(通)이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고 주스페인 공사와 대사를 지내 스페인어 실력이 출중하며, 주유엔대표부와 주헝가리 대사관ㆍ주일본 대사관 등을 두루 거치며 전방위적인 외교 경험을 쌓았다.

특히 주페루 대사로 재직 중이던 지난 1996년 12월 발생한 페루 주재 일본대사관저 인질 사건 당시 만 사흘간 인질로 잡혀 있으면서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경험을 했음에도 끝까지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퇴임 후에는 한국외교협회가 발간하는 계간 \'외교\'지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외교가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경북 성주(68) ▲한국외대 서반아어과 ▲남미담당관 ▲주유엔대표부 1등 서기관 ▲주스페인 공사 ▲주상파울루 총영사 ▲주일본 참사관 ▲문화협력국장 ▲주페루 대사 ▲주브라질 대사 ▲주스페인 대사

저작권자(c)연합뉴스. 2011/09/14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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