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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南核' 안보리 문턱까지 갔었다 / 조창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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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9-28 10:45 조회1,6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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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열전 \'南核\' 안보리 문턱까지 갔었다    

 

조창범대사 "냉혹한 국제사회, 오직 국가이익만"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정묘정 기자 = "조 대사, 결국 안보리에 안 가기로 했습니다. 백악관으로부터 한국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훈령이 내려왔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주재 조지 글라스 미국 대사 대리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가 열리기 불과 1시간전인 오전 9시께 조창범 주(駐)오스트리아 대사에게 황급히 알려왔다. 한국의 핵개발 의혹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지 않기로 했다는 워싱턴의 최종 통보였다.

   노심초사하며 간밤을 지새우다시피한 조 대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사회의 공식논의 절차를 앞두고 있었지만 안보리 행(行)을 집요하게 주장하던 \'슈퍼파워\' 미국이 막판에 고집을 꺾으면서 상황은 사실상 종료된 것이었다. 지난 수개월간 \'저주의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한국의 핵개발 파동이 고비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전인 2004년 11월 25일의 일이다.

   2004년 하반기 세계 외교가를 강타한 이른바 \'남핵(南核)\' 파동은 한국에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과학자들의 순수한 호기심이 빚어낸 \'해프닝\'이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고 심지어 혈맹(血盟)인 미국과 전통우방국들이 안보리 회부를 주도하고 나서면서 한국을 막다른 코너로 밀어 넣었다.

   북핵(北核)이라는 풀리지 않는 화두를 놓고 악전고투하던 한국으로서는 내부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맞닥뜨린 셈이다.

   정부가 남핵 파동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외교적 대응을 시도한 것은 2004년 8월 초였다. 조 대사가 외교부 본부 당국자로부터 \'비화기\'(秘話機.도청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제작된 통신기기) 전화를 받은 것이 이때쯤이었다. 극비의 보안을 요구하는 사안에 한해 비화기가 사용된다는 점에서 조 대사는 순간적으로 \'중대사안\'임을 눈치챘다.

   사실 우리 정부가 우라늄 분리 실험이 진행된 사실을 처음 인지했을 때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이뤄진 실험이었고, 농축된 우라늄과 관련 장비 등은 실험 직후 모두 폐기된 탓이다.

   문제는 IAEA의 추가의정서에 따른 신고였다. 우리 정부는 2004년 2월19일 추가의정서를 비준했고, 그로부터 6개월 내인 8월19일까지 국내 핵시설 및 핵물질에 관한 신고서를 새로이 IAEA에 제출해야 했다. 원자력연구소의 핵물질 추출 실험 역시 신고 대상이었다. 실험 자체를 \'비밀\'에 부쳤던 과학자들은 신고시한이 다가오자 당황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외교부로 달려왔다. 우라늄 농축 핵물질실험이라는 사안의 민감한 성격상 뒤늦은 신고 탓에 국제사회의 오해를 살 수 있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조 대사가 본부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은 일단 원자력연구원의 박모 핵연료연구단장과 연구원 한 명이 곧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니 상세한 내용을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철저한 보안 하에 박 단장을 대사관저에서 만나 정확한 경위를 청취한 조 대사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절감했다. 신고서를 제출받는 IAEA 쪽에 얘기해서 \'문제없이 넘어가도록\' 외교적 교섭을 시도해보라는 게 본부의 지령이었기 때문이다.

   조 대사는 \'숨기면 커진다\'는 판단 하에 철저한 투명성으로 대응할 것을 본부에 건의하고 곧장 이튿날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을 찾았다. 시쳇말로 \'자수해서 광명 찾자\'는 생각으로 모든 경위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조사 과정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표정이었다.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핵 비확산 노력의 선두주자로 꼽혀왔던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평소 한국에 우호적인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었지만, 이때만큼은 입장이 단호했다. 아무리 한국이라고 해도 \'특별 대우\'를 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IAEA 사무총장으로서 헌장 상의 직무를 등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IAEA 사찰단이 곧바로 한국에 파견되고 한국의 핵물질 추출 사실은 심각한 우려사안(matter of serious concern)이며 조사중이라고 IAEA 이사회에 보고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약 일주일 간격을 두고 1982년 4~5월께 한국원자력연구소가 공릉동 연구용 원자로에서 핵연료인 플루토늄을 극미량 추출했던 연료봉 화학실험 사실까지 드러났다. 정부는 이 실험도 우라늄 실험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학문적 탐구활동 차원으로 이미 지난 수년간 IAEA의 사찰을 받고 협의해 온 사안이라고 적극 해명했지만 국제사회의 반응은 싸늘했다.

   외신들은 "한국이 핵 개발에 나섰다"며 이 사건을 연일 대서특필했다. 각국 언론은 "양은 미미하지만 무기급에 매우 근접", "과학자들은 정부운영 연구소 소속" 등 한국 정부의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며 각종 의구심을 쏟아냈다.

   더욱 큰 문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였다. 만약 11월에 열리는 IAEA 이사회가 한국의 케이스를 안전조치 협정의 의무 불이행으로 규정하면 이 사건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과학자들이 호기심에서 핵물질 추출 실험을 한 사실이 제때 IAEA에 보고되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이는 안전조치 협정 위반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보고 실패\' 또는 \'보고 지연\'이며 핵확산 우려와는 전혀 무관하다라는 논리를 설파했다. 또한 한국 정부가 그 사실을 파악함과 동시에 IAEA에 자진 신고하고 시정조치를 취했으며 조사 과정에도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ㆍ캐나다ㆍ호주ㆍ영국ㆍ프랑스 등 이른바 \'핵 비확산\' 주창 국가들은 우방이라고 \'이중잣대\'를 적용할 수 없으며 \'결백 입증\'을 위해서라도 유엔 안보리로 넘겨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IAEA 이사국 중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존 볼턴 국무부 군축ㆍ국제안보담당 차관이 "한국의 핵물질 실험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이는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을 다루는 미국 정부의 공정성을 부각시키는 한편 "남ㆍ북한에 \'이중잣대\'를 들이대지 말라"는 북한의 항의를 피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었다.

   물론 안보리에 회부된다 해도 IAEA로부터 보고를 접수한 것으로 종결되거나 의장성명(President Statement) 등을 통해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을 주목(take note)하고 한국이 취한 조치를 환영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한국으로서는 핵 프로그램을 개발한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북한, 이란 등과 비슷한 급(級)으로 취급되는 것 자체가 억울한 일이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며 외교력을 총동원해 실험의 순수성과 적극적인 사찰협조, 핵투명성 등을 강조하며 국제사회 설득에 나섰다.

   최영진 외교차관과 오 명 과학기술부총리가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해 협조를 요청했고,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도 볼턴 차관 등과 \'담판\'을 짓기도 했다. NSC와 관련부처 실무진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는 30여 차례가 넘는 회의를 하며 대책 마련에 골몰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외교부 장관도 각종 정상회담이나 외교장관 회담이 있을 때마다 실험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또 국제사회의 의혹 확대 차단을 위해 \'평화적 핵이용 4원칙\'을 천명하기도 했다.

   코너에 몰린 한국에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와 수교 관계조차 없는 국가도 포함된 제3세계 비동맹운동(NAM) 국가들이었다. 당시 투표권이 있는 IAEA의 34개 이사국 가운데 14개국이 NAM 국가였다. 정부는 이들 국가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 다른 이사국들을 설득하고 만약의 경우 이사회 표 대결에도 대비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IAEA 이사회를 일주일 남겨둔 11월17일 열린 NAM 자체 회의는 우리에게 불리한 흐름을 뒤집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조 대사가 회의장을 찾아 핵물질 추출 실험의 근본성격과 경위를 상세하게 설명하자 회원국들이 이에 수긍한 것이다. NAM 국가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자체가 강대국의 논리에 따른 차별적 조약이라는 불만을 갖고 평화적 핵활동이 제약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해 오던 터라 한국의 입장에 적극 동조했다.

   이후 호주와 일본 등 안보리행을 주장하던 다른 국가들도 속속 입장을 선회했고, \'대세\'를 읽은 미국도 결국 자국 내 강경 입장을 누르고 이사회날 아침인 11월25일 \'안보리 회부 반대\'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당초 안보리 회부를 주장했던 프랑스는 IAEA 이사회에서 아예 공식발언을 하지 않았다.

   수개월간 세계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남핵 파동은 IAEA 이사회가 \'이 사건과 관련된 핵물질이 유의미한 양이 아니며 현재까지 미신고로 실험이 없었고 한국의 시정조치와 사찰협조를 환영한다\'는 의장 결론(Chairman\'s Conclusion)을 발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남핵 파동이 가져온 외교적 교훈은 "한국은 이제 강대국 힘의 정치에 휘둘리던 변방국가가 아니라 세계사의 중심부 일원으로 당당한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국익을 관철해 낼 수 있다" 는 외교적 자신감이다. 또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다만 영원한 국가이익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었다.

   19세기 중반에 영국수상을 두 차례 역임한 파머스톤(Henry John Palmerston) 경의 지적대로 국제사회는 자국 이익과 힘의 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관계가 뒤바뀔 수 있는 \'정글\'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는 지금 이 순간 전세계 외교의 최전선에서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 조창범 전 주오스트리아 대사 = 1972년 외교부에 입부한 이후 주독일대사관 서기관, 주오스트리아대사관 참사관, 동구과장, 구주국장, 주체코 대사, 주오스트리아 대사 등을 거친 대표적인 유럽통(通)이다.

   특히 빈 주재 국제기구대표부 공사와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 주오스트리아 대사 등을 지내며 굵직한 현안들을 다수 처리해 다자외교에 능통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경수로사업기획지원단 특별보좌역도 맡아 북핵 외교에도 전반적으로 밝다.

   2004년 하반기 외교가의 최대 이슈였던 \'남핵(南核) 파동\' 당시 주오스트리아 대사로 현장에서 IAEA 본부와의 교섭을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남 김해(64) ▲서울대 법학과 ▲주오스트리아대사관 참사관 ▲동구과장 ▲주오스트리아공사 겸 주빈 국제기구대표부 공사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특별보좌역 ▲구주국장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 ▲주체코대사 ▲주오스트리아 대사 ▲주호주 대사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8/15 08: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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