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 언론기고 및 출판





<외교열전> 美中 정찰기 충돌갈등, 한국이 풀었다/홍순영

페이지 정보

작성일2011-09-28 10:42 조회2,109회 댓글0건

본문

외교열전 美中 정찰기 충돌갈등, 한국이 풀었다   

2050412c2204172_P2.jpg
미 해군 EP-3
미 해군 EP-3.//1982.6.1 (워싱턴=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5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홍순영 주중대사, 中에 "승무원 먼저 풀어주라" 조언
11일만에 승무원 출국조치..中, 韓정부에 정중한 사의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정묘정 기자 = 2001년 4월12일 오전 7시30분, 중국 하이난도(海南島)의 성도 하이커우(海口) 군사비행장.

   일군의 미국 항공기 승무원들을 태운 콘티넨털 항공 소속 대형 전세기가 활주로를 가로지르며 이륙했다. 중국 최남단 군사비행시설의 심장부를 뜬 보잉 737기는 곧바로 \'미국령\' 괌의 앤더슨 기지로 향했다.

   근접 비행하던 중국 전투기와 충돌한 뒤 하이난도에 비상착륙한 미 해군 소속 정찰기 EP-3의 승무원 24명이었다. 중국 남해함대의 \'안방\'에 불시착했다 당국에 억류된 지 11일만에 출국조치된 것이다.

   이는 미ㆍ중 정찰기 충돌사건을 계기로 파국으로 치닫던 양국의 외교갈등이 극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물론 승무원 출국조치는 그 자체로 \'미완의 해법\'이었다. 기체반환은 물론이고 사고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둘러싼 본안(本案)협상은 여전히 미제로 남은 탓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접점없는 대치를 이어가던 미ㆍ중 분쟁에 분명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단초가 됐다. 그리고 그 막후에는 당시 홍순영 주중 대사를 비롯한 한국 외교관들과 정부의 \'숨은 중재역\'이 있었다.

   하이난도 인근 공해(公海) 상공을 무대로 미ㆍ중의 항공기가 충돌한 이번 사건은 외교적으로 매우 복잡한 함의와 폭발력을 응축한 양국관계 최대의 \'뇌관\'이었다.

   사고의 원인 규명과 책임을 둘러싼 기술적 논쟁 차원을 넘어 \'힘의 외교\'를 앞세워 대외 강경노선을 추구해온 당시 부시 미 행정부와 패권적 야망을 품고 새로운 \'굴기\'(떨쳐 일어남)를 시도하려는 중국 지도부의 정책노선이 부딪힌 이른바 \'외교 대 외교\'의 충돌이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부시 행정부가 중국이 반대하는 첨단무기를 대만에 판매하려는 민감한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양국관계의 긴장도를 가일층 고조시켰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과 접근방식은 첨예하게 갈렸다. 미국은 조속히 인질을 데려오고 정찰기를 회수하며 중립(中立) 상공에서 위협비행을 용인한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자세를 취했다. 중국은 미국 정부로부터 최대한도의 \'사과\'를 이끌어내고 미국 정찰기를 샅샅이 조사할 때까지 붙잡아둔다는 전략이었다.

   이번 사건은 시간이 흐를수록 양국 간 국제법 논쟁까지 가세하며 \'자존심\'이 걸린 감정싸움 양상으로 치달았다. 특히 \'사과\' 문제를 둘러싸고 양측의 신경전은 출구 없는 평행선 대치로 이어졌다.

   당시 베이징(北京)에서 미ㆍ중 간 분쟁을 지켜보던 홍순영 주중 대사는 "두 고래의 싸움이 시작된" 느낌을 받았다.

   한반도 주변질서를 좌우하는 양국의 외교갈등은 한반도 정세 전반에 걸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고 당시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추진에도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쉽게 말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의 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우려였다.

   두 강대국이 대립보다는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때 남북간에 공존과 평화통일이 보장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목표라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었다.

   그러던 차에 홍 대사는 사건발생 5일만인 4월6일 중국 안전부장(安全部長.우리나라의 국정원장 격)과 회동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개진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다.

   당시 홍 대사로서는 "강대국 간 분쟁에 주제넘게 나서는 것이 아닌가. 불필요한 모험이 아닌가"라는 걱정도 들었다. 본국 정부로부터 훈령도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자칫 미국의 맹방으로서 미국의 대변인 노릇을 한다고 오해받을 소지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중국의 친구로서 내 생각을 얘기하는 정도의 모험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고 결국 용기 있게 조언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홍 대사는 마주 앉은 안전부장에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나는 중국의 친구로서, 또 한ㆍ중 관계의 발전에 큰 이해관계를 가진 한국의 대사로서 이번 항공기 충돌사건에 관한 의견을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제시하고 한다. 먼저 중국 전투기 조종사의 사망에 위로의 뜻을 표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PYH2011071800340004300_P2.jpg
홍순영 前 외교부 장관
(서울=연합뉴스) 정묘정 기자 = 홍순영 前 외교부 장관이 지난 2001년 발생한 미중 정찰기 충돌 사건 당시의 활약상을 설명하고 있다. 2011.7.18 myo@yna.co.kr

   홍 대사는 크게 세 가지 줄기로 의견을 제시했다. "첫째, 항공기 충돌사고로 인한 분규가 악화돼 양국관계가 위기로 비화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조속한 해결이 요구된다. 둘째, 미국 국회의원 또는 언론의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대중국 비난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국무부의 책임 있는 관리들하고만 대화하라. 셋째, 우선 본안의 해결과 항공승무원 출국허가 문제를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승무원 출국을 먼저 허용하면 본안의 해결은 쉬워지고 또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핵심은 셋째 항목에 놓여 있었다. 승무원 출국과 본안 처리를 \'분리대응\'하는 것이 사건해결의 열쇠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이다.

   홍 대사는 이튿날인 4월6일 다이빙궈(戴炳國)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당의 외교부장 격)을 만나서도 같은 취지의 언급을 했다. 홍 대사의 제언은 안전부장과 당 대외연락부장을 통해 미국과의 교섭을 책임진 중국 고위층에 전달됐다.

   그로부터 5일이 지난 11일 중국 정부는 전격적으로 승무원 전원을 출국조치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과\'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묘한 절충점을 찾은 중국은 일단 승무원들을 먼저 풀어주고 나머지는 추후 협상하는 쪽으로 분리대응을 꾀한 것이다.

   \'사과\' 문제는 미국이 조지프 프루어 주중대사를 통해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부장 앞으로 보낸 외교서신에서 "정말 미안하다"(very sorry)고 표현하고 중국은 이를 중국어 번역상 \'사과\'라고 인정하는 선에서 묘하게 매듭지어졌다.

   양국은 승무원 출국 직후 본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2∼3개월간의 교섭 끝에 미국 정찰기를 분해ㆍ출국시키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건을 완결지었다.

   미ㆍ중 간 고도로 복잡한 외교전이 전개됐을 사건의 성격을 감안해볼 때 홍 대사의 \'분리대응\' 의견이 어느 정도 사건해결 과정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물음표다. 당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승무원 처리와 비행기 반환협상의 분리 전략을 추진했다는 설이 있고 중국도 사건 초기부터 어느 정도 유사한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는 뒷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홍 대사의 제언이 미ㆍ중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평행선 대치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사건해결의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속도\'를 더해주는 역할을 했음은 분명해 보인다는 게 외교가의 지배적인 평가다.

   특히 한국 외교의 \'총체적\' 중재노력과 맞물리며 가일층 무게감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4월6일 홍 대사를 만났던 다이빙궈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9일 한국을 찾아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나고 11일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다이빙궈 부장에게 조속하고 원만한 사건의 해결을 당부했다. 승무원 24명이 출국조치된 것은 바로 이튿날이었다.

   홍 대사는 사건이 해결된 이후 미ㆍ중 양국 정부로부터 정중한 사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국 정부는 베이징에 주재하는 여러 국가의 대사들로부터 의견개진이 있었으나 홍 대사의 의견개진이 "제일 정중하고 무게 있었다"고 평가했다는 후일담이 나오고 있다. 또 프루어 주중 미국대사도 이후 사적인 면담 기회에 "홍 대사의 역할을 잘 알고 있다"면서 깊은 사의를 표했다고 한다.

   홍 대사는 이를 두고 "나의 관여나 의견개진으로 사건이 신속히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나의 우정과 관심을 적절히 잘 표명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혹시라도 중국 정부가 원래부터 계획한 승무원 석방시기를 좀 앞당기는데 기여한 것은 아닌가 하고 희망적으로 혼자 생각하고는 있다"고 자세를 낮췄다.

   이번 사건은 \'고래등 싸움\'인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이 \'미들파워\'로서 보여줄 수 있는 중재외교의 일면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데 외교가는 의미를 부여한다. 힘이나 위협이 아닌 협조와 설득으로 갈등을 풀어내는 \'소프트파워\'가 21세기 외교의 키워드가 되고 있음을 새삼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순영 전 외교장관 = 정무와 통상에 모두 밝은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직언을 서슴지 않는 성품에 보스 기질까지 갖추고 있어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 외교부 장ㆍ차관과 주중대사, 통일부 장관을 모두 지내는 등 \'관운(官運)\'도 남다르다.

   1961년 고시 13회로 외교부에 들어간 이래 북미과장과 주(駐)유엔대표부 참사관, 아프리카 국장, 주파키스탄 대사, 주말레이시아 대사, 주러시아 대사, 주독일 대사, 주중 대사 등을 거치며 전방위적인 외교 경험을 쌓았다.

   5공 시절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전임자가 추진했던 아ㆍ태정상회의가 실현성이 적다고 주장해 포기시킨 일화는 유명하며, 1983년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 때는 북한의 공작 가능성을 제기해 초기 수습방향을 잡기도 했다.

   1989년 제2차관보 시절 북방외교의 외무부 최고 실무책임자로 불가리아ㆍ폴란드 등과의 수교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외교장관 시절에는 한ㆍ미ㆍ일 3국 공조에 따른 대북 포괄적 접근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장관 재임 기간 탕자쉬안 중국 외교부장을 한국으로 초청, 함께 온천욕을 즐기며 한반도 정세와 현안을 논의하는 등 한ㆍ중 간 \'온천외교\'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충북 제천(74) ▲서울대 행정학과 ▲대통령 비서실 정무비서관 ▲주파키스탄 대사 ▲외무부 제2차관보 ▲주말레이시아 대사 ▲주러시아 대사 ▲외무부 차관 ▲주독대사 ▲외교부 장관 ▲주중 대사 ▲통일부 장관 ▲한국외교협회 회장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7/18 08:00 송고

스크랩주소 : http://www.yonhapnews.co.kr/special/2011/07/13/1438010000AKR20110713160600043.HTML?audio=Y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47건 10 페이지
회원 언론기고 및 출판 목록
번호 제목
177 잘 주는 것도 나라 실력이다 / 김승호
일자: 05-10 | 조회: 1447
2011-05-10
1447
176 역사의 주류와 역류의 갈림길에서 / 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309
2011-05-10
1309
175 외교부의 빛과 그림자 / 이강원
일자: 05-10 | 조회: 1597
2011-05-10
1597
174 Four powers on state of world …
일자: 05-10 | 조회: 1176
2011-05-10
1176
173 Looking back on Korean history…
일자: 05-10 | 조회: 1590
2011-05-10
1590
172 새 대북정책의 모색 / 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226
2011-05-10
1226
171 필리핀 대통령들의 6·25전쟁 인연 / 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470
2011-05-10
1470
170 우리 외교를 살리는 길 / 박동순
일자: 05-10 | 조회: 1925
2011-05-10
1925
169 G20 정상회의 의장국의 영예와 부담 / 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277
2011-05-10
1277
168 포츠머스 조약의 교휸 / 김정원
일자: 05-10 | 조회: 1424
2011-05-10
1424
167 안보위기 앞의 한국 사회 / 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071
2011-05-10
1071
166 핵무기 없는 세상과 한민족의 운명/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330
2011-05-10
1330
165 남북통일과 ‘융합외교’ /정태익
일자: 05-10 | 조회: 1233
2011-05-10
1233
164 China and N. Korea vs. U.S. an…
일자: 05-10 | 조회: 1265
2011-05-10
1265
163 한국전 포로협회에 관심 가져주길/손훈
일자: 05-10 | 조회: 1331
2011-05-10
1331
162 초정파적 외교안보 협력기구를/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130
2011-05-10
1130
161 8월에 돌아보는 이념 분열 백 년/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182
2011-05-10
1182
160 주민 뜻 무시하는 개발 안된다/신두병
일자: 05-10 | 조회: 1304
2011-05-10
1304
159 리비아 감동시킬 외교를/김승호
일자: 05-10 | 조회: 1347
2011-05-10
1347
158 We didn’t do so bad at the UN/…
일자: 05-10 | 조회: 1018
2011-05-10
1018
157 안보리 의장성명에 중·러 동참한게 성과/박수길
일자: 05-10 | 조회: 1366
2011-05-10
1366
156 선진국 민주정치의 시련이 주는 교훈/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125
2011-05-10
1125
155 China and N.K. vs. U.S. and S.…
일자: 05-10 | 조회: 1112
2011-05-10
1112
154 이념 과잉의 시대를 개탄한다/윤영관
일자: 05-10 | 조회: 1103
2011-05-10
1103
153 Reflections on the Korean War/…
일자: 05-10 | 조회: 1373
2011-05-10
1373
152 공동체 시대/라종일
일자: 05-10 | 조회: 1235
2011-05-10
1235
151 6·25의 회상, 월드컵의 흥분, 통일한국의 꿈/이홍구
일자: 05-10 | 조회: 1118
2011-05-10
1118
150 북한 급변사태를 통일 기회 삼아야/김석우
일자: 05-10 | 조회: 1243
2011-05-10
1243
149 전교조의 정체성 문제/이인호
일자: 05-10 | 조회: 1247
2011-05-10
1247
148 아직도 먼 일본의 '새로운 시작'/이주흠
일자: 05-10 | 조회: 1283
2011-05-10
1283
게시물 검색







한국외교협회 | 개인정보 보호관리자: 박경훈
E-mail: kcfr@hanmail.net

주소: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94길 33
TEL: 02-2186-3600 | FAX: 02-585-6204

Copyright(c) 한국외교협회 All Rights Reserved.
hosting by 1004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