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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의 강력한 월드컵 유치 리더십 / 이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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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9:32 조회1,3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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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게임 이상의 것’(Football is more than a Game)이란 FIFA의 모토는 지난 12월 2일 취리히에서 있었던 월드컵 개최국 선정 투표과정에서 생생하게 증명됐다.

 러시아와 카타르가 각각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후에도 이를 큰 이변(異變)이며 충격적인 결과라는 반응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패자들의 시각을 대변할 뿐이다.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였던 영국과 러시아의 경쟁이 1차 투표에서 러시아 9표 대 영국 2표로 나왔을 때, 윌리엄 왕자와 캐머런 총리를 앞세웠던 영국 대표단은 물론 축구의 종주국을 자부하던 영국 국민들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겐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이변이었을 것이다. 2022년 개최지 선정과정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이 1위로 예상했던 미국이 1차 투표의 뚜껑을 열고 보니 겨우 3표, 2위 예상국이었던 호주는 단 1표로 탈락하는 치욕적인 결과가 나왔다. 카타르가 1차 투표에서 과반수에 1표 못 미친 11표를 얻고 나니 대부분의 대표단 표정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축구 평론가인 랍 휴스가 지적한 대로 잉글랜드는 오만했다. 전통에 대한 집착이 낳은 오만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가를, 그리고 FIFA와 축구계의 내부정치가 얼마나 복잡해졌는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안일하게 유치활동에 임했던 것이다. 반면, 새 시대의 세력 판도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이에 맞는 유치전략으로 전력투구한 러시아와 카타르, 즉 승자의 입장에서는 이변이 아닌 당연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세력 판도가 뒤집혔느니, 문명의 충돌이니 하는 것은 승자의 귀에는 공연한 시비였고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냉전 이후 지난 20여 년 빠른 속도로 진행된 세계화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새로운 지구촌의 면모와 동력을 창출했다. 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축구라고 예외일 수 있었겠는가. 지구촌 6대 주의 세계인 모두가 즐기는 축구, 대부분의 큰 경기를 안방과 광장의 TV스크린으로 중계하는 정보혁명, 이에 주저함 없이 투자하는 대기업 스폰서의 이른바 황금삼각대는 이미 축구를 스포츠 이상의 정치경제적 및 사회문화적 콘텐트로 만들었다. 이 세기적인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한 것이 FIFA이며 그 결과로 월드컵은 세계에서 가장 수익이 큰 한판 스포츠가 된 것이다. 사실 이번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정도 FIFA의, 특히 블라터 회장의 섬세한 제작 시나리오에 따른 작품이란 측면이 없지 않다.

 다극화된 21세기의 스포츠외교에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요건이란 결론은 이번 월드컵 후보지 선정과정에서 재확인되었다. 절대왕권을 갖고 있는 카타르의 국왕(알타니)은 상당 기간 본인이 직접 유치활동에 나서 전통적인 무슬림 유대를 한데 묶었을 뿐 아니라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평화 가능성을 부각시키고 아랍사회가 중세적 종교 관행에서 벗어나 문화적 세계화에도 동참하고 있음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인지 후보로 카타르가 확정된 후 알타니와 함께 무대에 오른 모자 왕비의 붉은빛 드레스는 깊은 뜻을 함축한 듯 보였다.

 한편, 소련 해체 후 방황하는 듯 보였던 러시아를 확고한 강대국의 위치에 정착시킨 푸틴 전 대통령이자 현 총리의 지도력은 내외에 과시된 지 이미 오래다. 소치 겨울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이미 스포츠외교의 달인임을 과시했던 푸틴은 이번에도 극적인 연출을 거듭했다. FIFA 위원들의 투표에 불필요한 압력을 가한다는 오해를 피한다고 러시아의 프레젠테이션 참석 예정을 하루 전에 취소했던 푸틴은 개최국 확정 직후 취리히에 나타나 승전 기자회견을 여는 드라마를 펼쳤다.

 카타르의 알타니나 러시아의 푸틴은 그들의 절대권력에 더하여 여타국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원과 자금을 갖고 있다는 것도 물론 유치 성공의 주요 요인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민주사회가 지닌 스포츠외교의 취약점이 새로이 노출되며 그 심각성에 대한 지적이 뒤따랐다.

 우리 한국도 두 개의 꿈을 안고 선전(善戰)했다. 첫째는 2002년의 4강 신화를 20년 만에 단독으로 재현하겠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2022 한국 월드컵을 통일의 관문으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투표 직전에 터진 연평도 사태, 한·일 협조 불발 등 악재까지 겹쳐 월드컵 개최의 꿈은 일단 접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우리의 꿈은 결코 버릴 수 없다. 우리 국민이 축구에 매혹되는 것은 우리가 마음과 힘을 모으면 통일이란 골문도 반드시 열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역사의 흐름이 우리를 부추기고 있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중앙일보 (2010.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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