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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연·이철 북한 외교관의 추억/박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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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6:00 조회1,9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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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박길연 대사가 뉴욕 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를 18년간 이끌었다. 유엔과 제네바의 다자 외교 무대에서 북한 외교관들은 장기 근무한다. 이철 대사는 20여년간 제네바(스위스 주재대사 겸임)를 누비고 있다.

유엔과 제네바에서 외교관 생활의 주요 부분을 보낸 나에게 두 대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평양으로 귀임하는 박 대사는 영어에 능통하나 다소 대결형이다. 이 대사는 불어가 유창하고 정중하며 사교적 대화가 되는 인물이다. 냉전과 남북 대결시대에 박 대사와는 각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불행한 인연이 겹쳤다. 이 대사와는 남북 긴장 속에서도 대사 간 오·만찬을 몇번 번갈아가며 했다. 이 대사와 이러한 관계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김정일 위원장의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시절 측근으로 근무한 적이 있어 그의 재량권 범위가 일반 대사보다 훨씬 컸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2월 유엔 안보리는 KAL 폭파사건을 토의했다. 나는 외무부 정무차관보로서 최광수 장관과 함께 그 회의에 참석했다. 안보리 회의에서 박 대사는 KAL기 폭파가 한국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내가 수백만 달러의 현금과 보석으로 바레인 정부의 수뇌부를 매수해 김현희를 서울로 데려왔고, 그 사실을 스스로 자백했다는 거짓말을 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우리 대표는 니체의 ‘자라투스트라’의 한 구절(‘누구라도 악마들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악마로 전락하지 말아야 한다’)을 인용하고 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그런 자백을 하였는지 밝힐 것을 요구했다. 북한의 주장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중국 대사 리루에(李鹿野)는 후일 자기의 외교관 생활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경험이 그때였다고 회고했다. 95년은 한국이 유엔 가입 후 4년 만에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진출에 성공한 해였다. 박 대사는 집요하게 방해공작을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국익을 위한 외교관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17세기 대영제국의 대사였던 와튼경의 말이 인용된다. “대사는 그 나라의 이익을 위해 외국에서 거짓말하도록 파견된 정직한 사람이다.” 외교에 대한 이러한 냉소주의적 태도가 통용된 시대는 오래 전 이야기다.

오늘날 외교 정책이 국제사회의 신뢰와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의 도덕적 영향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북한은 지금도 체제의 성격상 거짓을 정책으로 포장해 선전하고 대사는 앵무새처럼 그 정책을 옹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국제회의에서 그들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았고 얼굴을 붉히며 다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불가능한 역할을 하는 북한 외교관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곤 했다. 박·이 두 대사를 다시 만날 땐 통일된 한국의 장래를 함께 이야기하며 정담을 나누고 싶다.

박수길 전 유엔 대사

중앙일보 칼럼/2008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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