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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파동서 본 세계화와 민주주의/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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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6:05 조회1,2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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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 빨리 변한다. 너무 빨리 변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한국 사회는 10여 년 전에 비해서 너무나 변해버렸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화의 바람이 이렇게 드세지는 않았다. 우루과이라운드 체결로 농업개방의 충격이 몰아닥친 것은 겨우 13년 전 일이다. 우리 경제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수출 덕택이었고 앞으로도 수출을 계속해야 하겠기에 어쩔 수 없이 농업부문의 보호 장벽을 낮춰야만 했다. 잘나가던 것처럼 보이던 한국 경제가 단숨에 무너져버린 외환위기도 바로 11년 전 일이다. 세계 금융이 통합되고 엄청난 단기자본이 순식간에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데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다 하루아침에 당한 것이 세계화의 두 번째 충격이었다. 세 번째는 자유무역협정(FTA)의 도전이다. 도하라운드 다자협상이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타결되지 않자 모든 나라들이 양자 FTA 체결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통상 국가 한국은 가장 뒤처졌다. 늦게나마 서둘러 한·칠레 FTA를 체결했고 최근 한·미 FTA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쇠고기 파동이 불거졌다.

인구 4700만 명, 면적 10만㎢의 자원 빈국으로서는 통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전략이 성공해 국민소득 2만 달러까지 왔고 이 길 외에는 전략적 대안이 안 보인다. 문제는 통상을 위해 불가피한 세계화가 우리 사회에 단기적인 충격과 갈등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수출 대기업들은 이득을 보는 반면 농업개방 때의 농민, 외환위기 때의 실업자, FTA 체결 때의 취약 산업 종사자들은 피해를 보고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첫째는 정부의 정책이 사회적 약자를 품어안고 함께 잘 사는 방향으로 나가고자 하는 것인지의 문제다. 피해 보는 계층과 약자 층에 대한 재교육, 직업훈련, 사회적 보장정책 등 충분한 보완 조치가 없는 경우, 세계화 전략은 국민 모두가 아니라 잘 사는 소수만을 위한 정책으로 비춰질 것이다.

둘째는 세계화의 충격을 수습해 나가는 과정과 절차가 얼마나 민주적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주의는 10여 년 전과는 전혀 달라져 버렸다. 1987년 대통령 직선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분산과 견제라는 민주주의 기본원리가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실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부터였다. 이제 검찰·국세청·국정원 등 권력기관들은 대통령으로부터 상당한 독립을 유지하게 되었다. 정경유착의 고리는 약화되었고 언론은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양분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인터넷 언론의 성장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 어젠다 설정에 큰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아무나 휴대전화로 찍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띄우고 이것을 보고 수만 명이 금세 시청 앞 광장으로 나오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 같은 새로운 정치구도는 되돌릴 수 없고 되돌리려 해서도 안 되는 상수(常數)가 되어버렸다.

이제 한국 사회는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나가되 면밀한 대외협상으로 우리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부작용을 민주적으로 극복하며 국민을 통합해내는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쇠고기 파동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 첫째,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변해버린 정치 구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국민과 쌍방으로 소통할 수 있는 새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아무리 합당한 대외협상이라도 그것이 왜 필요하고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오는데 어떻게 대처할 건지 사전에 국민과 충분히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회와 정당이 제 역할을 해서 정상적인 정치가 부활되기 바란다. 둘째, 대외협상은 정치적 결단을 내리기 전에 관료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되 우리 쪽에서 먼저 데드라인을 정하면 협상이 실패하기 쉽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느 특정 계층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정부라는 입장에서 넓게 사람을 써서 사회 각 부문의 다양한 소리를 듣고 반영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세계경제 침체, 석유 위기, 곡물 위기, 기후변화협약 등 더 큰 도전들이 산적해 있다. 새로운 발상과 시스템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쇠고기 파동은 반미, 반세계화 이념 갈등으로 확산되고 연이어 제2, 제3의 국가적 위기가 닥칠까봐 대단히 걱정된다.

윤영관 서울대·국제정치학

중앙일보/2008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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