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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윤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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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6:04 조회1,2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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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이 북측이 제공한 핵 관련 서류 꾸러미를 들고 판문점을 넘어오는 사진이 보도되었다. 요즈음의 한반도 정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가랑비에 바지 젖듯이 한반도도 냉전 종식이라는 가랑비에 서서히 젖어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북핵 협상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시리아에의 핵기술 이전이라는 어려운 문제는 피해가면서 플루토늄 문제만이라도 해결해 보자는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 북측 입장에서는 영변 시설은 이미 노후돼 폐기된 상태고 이제 핵무기도 몇 개 보유하고 있을 터이니 앞으로 쓸 카드가 더 남아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시켜도 아직 여러 다른 제재조치들이 카드로 남아 있다. 플루토늄과 영변 핵시설만이라도 우선 제거할 수 있다면 부시 행정부의 외교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북·미 관계 개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실 미·소 냉전이 종식된 직후부터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에 관계개선을 요청해 왔다. 최초의 북·미 고위급 회담이었던 1992년 1월 아널드 캔터-김용순 회담에서도 김용순은 북한이 주한미군의 존재를 인정하고 미국의 우방이 될 수 있음을 제의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때는 과감한 한반도 탈냉전 조치를 취할 정치적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고, 한·미 양국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16년이 지나고 두 번의 핵 위기를 경험하고 난 지금에서야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이라는 목표를 서서히 달성해 가고 있다.

문제는 남북관계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공식 대화가 단절됐고 북은 대기근의 상황 앞에서도 우리 측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지 않고 있다. 그런 사이에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있으니 우리만 고립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상황의 본질을 좀 더 깊이 생각하며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과거 중·소 분쟁 때와 비슷하게 이제 미·중 간에 줄타기 외교를 하며 실리를 취하려 할 것이다. 또한 남에 대해서는 과거에 자주 그랬듯이 앞으로의 탈냉전 과정에서도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수시로 구사할 것이다. 미국과 가까이함으로써 남한을 견제하고 한반도의 대표주자 역할을 하려 시도할 것이며, 경제를 살리면서도 정치적 내부 단결을 시도하기 위해 남한을 경쟁 타깃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지난 대선과 총선을 통해 보여준 민심은 국민들이 남북 간의 협력을 원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떤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어떤 원칙이어야 할까? 나는 그것이 모든 대북 협력은 북한에 사는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개선시키도록 추진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본다. 바꾸어 말해 북한의 정치지도자들이 남한을 향해 흔히 하는 말, 즉 “민족은 하나다”라는 혈통적 민족주의에 우리가 무조건 따를 것이 아니라, 모든 협력이 북한 주민의 인간답게 살 권리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이 살기 위해 미국과 관계개선을 시도하는 마당에 정작 남한에서는 “민족”을 외치며 “반미”할 근거도 사라질 것이다. 실질적으로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화의 흐름을 북한이 타보겠다고 하는 상황이기에,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 차원에서라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할 명분은 약화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 문제의 해법도 보이지 않을까? 북한 주민의 삶이 가장 중요한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라면 꼭 남북 간 직접 제공의 형식을 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수백만t의 식량을 지원해 오면서도 정작 그 식량이 가장 힘든 주민들에게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식량배분에 대한 모니터링 메커니즘을 갖춘 WFP와 같은 국제기구들을 통해 제공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북·미 관계가 급속 진전된다고 해서 그렇게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한·미 관계에 신뢰를 쌓아가면서 오히려 환영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남북 간에는 민간 차원에서 경협과 인도적 지원이 진행 중이고 앞으로 결국은 공식 채널도 열릴 것이다. 협소한 의미의 혈통적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북한 주민의 사람답게 살 권리를 돕는 것이 탈냉전을 이끌어내는 우리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세계사적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한반도 평화전략이라고 본다.

윤영관 서울대·국제정치학

중앙일보/2008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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