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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무엇이 우리를 구해줄 것인가/이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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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8:44 조회1,3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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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들리는 것이 조용한 한숨 소리나 비분강개의 고성이다.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성공했다고 자부하던 나라에서 노숙인과 경제적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가는 데 국회는 이성적 대화가 아니라 폭력의 장으로 변했다. 어떤 전직 대통령은 이를 나무라기보다 갈등을 부추기고 젊은 세대는 앞서간 세대를 싸잡아 매도하는 형국이니 전 세계적 경제위기의 거센 파고 앞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산산조각이 나는 듯한 느낌이다.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은 소통이 막힌 사회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반영하는 비극이고 자칫하면 소통의 부족을 폭력적 파열로까지 몰고 가는 구실로 이용될 조짐마저 보인다.

사실 우리에게 닥쳐오는 현실적 어려움은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 세계가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에 더해 한국은 압축성장의 혜택을 조급하게 누려온 대가를 이자까지 합쳐 지불하는 큰 시련을 겪을 조짐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고 낮고 간에 국민 모두가 불안과 공포에 빠져드는 듯한 가장 큰 이유는 눈앞에 닥친 어려움 자체보다 힘을 합쳐 극복하는 데 구심점이 돼야 할 미래에 대한 고무적 전망이나 정치적 지도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민적 저력은 크게 발전했는데 그에 걸맞은 지도자나 통합적 이상이 없다.

지도력의 부족이 과연 개인의 자질 문제인가 아니면 지도자를 키워내고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 깊숙이 내재한 고질적 병폐 때문인가. 이명박 정부가 그를 선출해 준 유권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점은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임기 4년이 남은 정부를 선동적 좌파 지식인의 주장대로 ‘부자들만을 위한 파시스트 정부’로 규정하고 타도하면 더 나은 대안이 나올 것인가.

압축성장의 대가 이자까지 내나

정부나 국회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함은 이 정부에서 시작된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이명박 또는 어떤 다른 이름을 가진 자연인일 뿐 아니라 직책의 수행을 통해 국민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내는 이 나라의 대외적 얼굴이요 머리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임기 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의미에서는 어느 신임 대통령도 물러난 정권의 내키지 않는 계승자가 될 수밖에 없다.

용산 철거민 문제만 해도 새로 생긴 것도, 이번 일로 사라질 문제도, 정부만이 책임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주택개발사업은 경제발전의 핵심적 한 부분이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서 추진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개발의 이익이 공정하게 돌아가는 제도적 원칙의 정립과 운영에 필요한 만큼의 주의와 정성을 기울이지 못했다.

때문에 이익의 분배에서 부당하게 배제됐다고 느끼는 사람은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폭력 사용도 불사하는 항거세력이 되는 한편 이익을 보는 사람은 불로소득의 이익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런 부당한 제도를 영속화하는 데 쉽게 공모자가 됐다. 그런 가운데서 운만 좋으면 일확천금도 가능하다는 사행심과 모든 부는 도덕적으로 부정하다는 편견이 사회에 만연하고 그런 편견을 정치자본화하려는 불순한 정치세력이 판을 치게 됐다.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참혹한 죽음을 맞은 사람과 그 가족에게는 어떤 말이나 물질적 보상도 위로가 될 수 없다. 죽음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경찰을 그들이 탓하는 것은 이해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화염병과 사제총, 시너로 무장하고 주변 사람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행위를 경찰이 어찌 방치할 수 있겠는가. 소수의 몰매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다수의 시민의 안전과 권익을 보호하는 일을 수행하는 그들이 없다면 시민사회는 존립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도 설 자리가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인류 사회 전체가 지각변동을 체험하는 위기 속에서 인구는 많아도 자원은 없고 급속하게 고령화되는 우리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긍지와 도덕적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인가. 일체의 환상을 버리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30, 40년 전 경제기적을 촉발시켰던 시절의 결연한 자세로 되돌아가는 길뿐이다. 갈등을 부추기지 않아도 갈등의 소지는 너무도 많다. 하지만 서로가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본다면 어려운 것은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협조하는 자세를 보일 때 여당도 야당도 국민의 눈에 돋보이게 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음식 한 끼에 반드시 4시간씩 일하고 먹자’. 대한민국 초기 지도자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리를 지켜줄 힘은 그런 데서밖에 기대할 수 없다.

이인호 KAIST 석좌교수

동아일보/2009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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