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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몸값 대주기 안 된다/소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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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9:00 조회1,2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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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 상봉 사업에 협력하게 하기 위해 상봉 장소에 나오는 북한측 이산가족 사람 수에 따라 몸값을 북한 당국에 치르자는 일부 여론이 있다고 들었다. 선뜻 찬성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독일 분단 시기 서독 정부는 동독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이나 이들과 비슷하게 인권탄압을 받아 생명이 위태로운 동독인들을 동독 정부에 돈을 주고 구조해 낸 적이 있다. 1945년 독일 분단 이후 1961년 여름 동독 정부가 베를린 장벽을 세울 때까지 매일 평균 2000명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했다. 장벽이 생긴 다음에는 탈출에 성공하는 동독인들의 수가 당연히 급감했고, 많은 동독인이 탈출 기도 과정에서 동독 경비병한테 사살되거나 잡혀서 감옥에 갇혔다. 이런 사람들을 포함한 정치범들과, 서독에 사는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 동독을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갑작스럽게 세워진 장벽 때문에 서독에 있는 부모와 격리당한 어린이들(당시 약 4000명 추산)을 구출해 내기 위해 1963년에 서독 정부의 \'전 독일 문제부\'가 나서서 동독의 정보기관과 거래를 시작했다.

1962년에 서독 개신교회가 동독측과 은밀하게 교섭하여 동독에 갇혀 있던 교회 사역자들과 20명의 어린이를 뇌물을 주고 구출해 온 일에 고무되어 서독 정부가 나섰던 것이다. 1970년대 초까지 한 사람당 4000DM(서독 마르크), 1977년에 9만6000DM까지 인상했고, 1980년대에 가족재결합의 경우는 한 사람당 4500DM으로 조정하는 등 대상에 따라 그 값을 흥정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어 진행되었다. 이렇게 \'사람 사오기\' 구출작전(Freikauf)으로 1989년에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약 3400명의 정치범이 구출되고 2000명 이상의 어린이가 서독의 부모에게 돌아왔으며 25만명 이상의 서독 가정이 동독에 있던 이산가족들을 구출하여 재결합했다. 그런데 1973년부터는 당시 동독 대통령 호네커가 이 일을 직접 지휘하고 감독했고, 여기서 얻어진 막대한 돈을 대부분 자기 통치체제를 유지·강화하는 데 썼다는 것이 독일 통일 후에 밝혀졌다.

서독 정부의 인도주의 사업은 감상이나 온정의 정서가 그 기초가 아니고 대상자들의 인권을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개선하고 보호하는 작업이었고, 사람을 구해내는 작업이었다. 단지 일시적으로 위로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동시에 동독 내부 정세에 자유와 인권 사상을 파급시키는 실제적 효과도 겨냥한 전략적 방책이었다. 이 구출작전 덕으로 서독으로 탈출하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독에 남아 있던 그들의 친지나 지인들, 그리고 이 서독 정부의 구출 노력을 알고 있었을 수많은 동독인의 정서를 고려하면 서독의 구출작전이 독일 통일 후에 독일 사람들의 정서적 화해와 융합 과정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북한 당국이 북에 있는 이산가족들이 평화적으로 떠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꾸며놓은 무대에서 각본에 따라 연출되는 \'이산가족 상봉\' 장소에 사람들을 내보낸다고 해서 북한에 돈을 주자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이산가족들을 타산적으로 이용하는 부도덕한 행위가 될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이산가족을 또 하나의 외화벌이라 여기고 본격적으로 덤벼들어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들을 끌어내려 할 것이다.

우리는 재북한 이산가족이 남한 가족을 잠시 만나고 돌아가서 자기들 처지를 생각할 때 참담한 심정이 될지, 정말로 더 행복하게 여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형식으로든 이산가족 상봉 허가에 대한 값을 북한에 제공한다면 북한 당국은 더 많은 사람을 본인 의사에 상관없이 끌어낼 것이고, 결국 우리는 인도주의 겉치레 속에서 북한 당국에 그들의 \'선군정치-강성대국\' 자금 창구를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 현명치 못한 처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소병용 퇴직 대사·자유지성300인회 이사

조선일보/2009년 9월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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