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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고발 보상제도의 효과/이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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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9:09 조회1,1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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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아직도 인간교육의 장으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고 선생님의 권위가 서있을 때 어린이가 일찍이 직면하는 도덕적 고민 중 하나는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선생님 말씀을 어기고 잘못된 짓을 할 때 선생님께 일러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자기들끼리 타일러서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그것은 역부족이다. 정의의 편에 서서 선생님께 이르자니 친구에 대한 배반처럼 보일 수가 있고 당사자로부터의 보복은 물론이고 다른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의보다는 의리를 중시하고 공공심보다는 정실에 치우치기 쉬운 우리의 전통에서는 공익에 해가 되더라도 이웃의 잘못은 덮어주는 일을 미덕처럼 여기는 것이 보통이니 어린아이의 사회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옆의 아이가 나쁜 짓을 해도 내 이해관계와 직접 상관없으면 눈감아 준다. 작은 잘못이라도 서로 감시하며 애초에 바로잡는 기풍이 한번 무너지면 학교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모범생으로 흠모의 대상이 되어야 할 학생이 오히려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일을 막을 길이 없게 된다. 심지어는 졸업 후에까지 모교를 찾아와 졸업하는 후배들을 폭력으로 발가벗기는 등의 엽기적 졸업식 풍경으로 이어진다.

불행히도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이에서, 다시 말하면 국민 개개인의 기본적인 가치관과 인격의 토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어떤 분명한 대책도 내놓지 못한 교육과학기술부가 느닷없이 교육청의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에게는 억대의 보상금을 주겠다는 대안을 들고 나왔다. 비리고발 보상금이라는 기괴한 대안을 정부가 들고 나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교통위반 고발사례금 제도라는 것도 있었지만 이 나라의 교육, 그리고 사회의 도덕적 기강과 정서적 결속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교과부가 교육청의 비리와 부패를 뿌리 뽑겠다고 그런 대안을 내걸었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교육청까지 나선 면피행정

내부자 고발이 오죽 필요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하고 동정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억대의 보상금을 바라는 사람이 몇몇 비리 사례를 고발하고 보상금을 타 간다고 해서 교육감이나 교육위원 선출에 막대한 돈을 쓰는 일이 비밀이 아닌 지가 오래된 교육청의 비리가 뿌리 뽑히리라 진정 믿는가. 국민의 질타를 무마하기 위한 얄팍한 눈가림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보상제도에 쓰이는 막대한 예산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시민의식이나 정의감의 발로가 아니라 금전적 보상을 위해 국민 간에 서로를 고발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한다면 대한민국은 과연 사람이 살 만한 사회로 남을 것인가.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교육청 관련 비리와 부패 문제의 심각성을 몰라서 하는 비판이 아니다. 제시된 대안이 진정한 대안이 되지 못할뿐더러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 되어온 관료의 안이한 발상과 효과는 없으면서 비용만 드는 전시행정의 낭비 예를 그 속에서 보기 때문이다. 사실 교과부만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 생긴 관행인지 모르지만 교육이나 문화 등 무형의 가치를 다뤄야 하는 행정부서들은 어떤 철학이나 소신을 갖고 일하는 것이 없이, 모든 일을 단지 면피를 위해 추진한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인가를 하기는 했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음을 보이기 위한 방법으로 웬만한 일은 다 공청회에 부치거나 조달청의 공개입찰과정을 거쳐 외부에 용역을 주는 양식을 취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낭비를 가져오는 동시에 일 자체를 그르친다. 예를 들면 국제학술회의를 하는 데도 조달청 입찰을 거쳐 주관처를 선정해야 한다. 결국 내용이 알찬 회의는 준비할 시간을 놓치고 겉으로만 화려하고 실속 없는 행사가 된다.

책임지지 않고 예산만 낭비

부패와 비리는 사실 금전적 거래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부실한 일 처리는 국회의원의 경우에서 행정 관료에 이르기까지 책임 있는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뿌리 깊고 거대한 규모의 부패와 비리라고 볼 수 있다. 어떤 특정지역의 표를 얻기 위해 수도를 옮기겠다는 발상을 하고 국민 대다수와 헌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천에 옮기려 했다는 일 같은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런 것을 뿌리 뽑는 길은 국민의 시민의식 수준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작은 일에서부터 잘못된 것, 곧 공익에 위배되는 사안은 용납하지 않고 고발하여 뿌리 뽑는 일,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고 받는 일만이 부패와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그런 면에서 ‘비인간적’인 냉정과 용기를 요구하는 제도임을 국민 스스로가 깨달아야 한다.

이인호 KAIST 김보정 석좌교수

동아일보/2010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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