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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의 빛과 그림자 / 이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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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9:28 조회1,7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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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교부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온몸에 멍 자국투성이다. 어느 정부기관이 그토록 모진 몰매를 맞은 적이 있었을까. 새삼 35년간 외교부에 몸담았던 남편과 함께 보낸 세월이 되살아난다.

40년 전, 해외여행이 복권당첨처럼 생각될 때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주브라질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발령받은 남편의 손을 잡고 비행기 트랩을 밟았다. 외교관 부인은 음식도 잘하고 외국어도 잘해야 한다는데 준비된 것이 별로 없는 것이 좀 걱정되기는 했지만 무모함이 하늘을 찌르는 20대 중반이었다. 이 무모함의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혹독했다. 외교관 부인의 기본기인 요리와 외국어, 의전 등의 훈련은 군사 훈련과 진배없는 고된 길이었다.

남편의 사정도 만만치 않았다. 현지 사정과 현지어를 익히기 위해 퇴근시간도 주말도 없이 대사관에 머물렀다. 코피를 쏟은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나라가 어렵다 보니 봉급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열등해서 생활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1970년대와 80년대를 한국의 경제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그렇다. 우리의 경제개발의 바퀴를 돌리는 데는 오지에 뼈를 묻은 외교관과 그 가족의 순수한 뜻도 분명히 보탬이 됐을 것이다.

지금은 좀 개선됐지만 얼마 전만 해도 아프리카나 남미 등 오지에서는 기본 생필품도 없는 곳이 많았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내전(內戰), 감기처럼 자주 발생하는 쿠데타, 이름도 알 수 없는 해충과 풍토병…. 외교관은 이런 열악한 환경에 마치 탐험가처럼 생살을 비벼서 그 환경과 타협하고 벗을 만들고 국익을 끌어내기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작은아이는 세 살이었다. 보이지도 않는 해충에 온몸이 물려 뻘겋게 부어올랐다가 물집이 생기고 터지는 고통을 그곳에 근무하는 2년 내내 겪었다. 가려워서 우는 아이를 온 가족이 안고 밤을 새운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래도 풍토병에 희생된 외교부 입부 동기에 비하면 다행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2~3년 단위로 학교가 바뀌는 교육의 어려움이나 휴지, 성냥, 쌀 등 생필품이 없는 불편함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생사의 문제가 목전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A부인은 아프리카 근무 중 얻은 풍토병으로 꽃다운 30대 후반에 목숨을 잃었다. P서기관의 아들, L참사관의 딸도 그랬고 격무로 인한 교통사고로 희생된 외교관도 적지 않다. 물설고 낯선 외지에서 생활의 터전을 잡는 것도 어려운데 공무(公務)의 짐까지 지고 있는 부담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알기 어렵다. 나는 외교관은 우리나라의 최전방 군인과 다를 것이 없다고 믿고 있다.

물론 주재국으로부터 받는 특별한 대우가 있다. 주재국 대통령부터 장관, 경제·문화계에 이르기까지 그 나라의 중심으로 파고들어가는 성취감도 있다. 특혜라면 특혜다. 그러나 그 성취감의 이면에는 혀가 마비될 정도로 영어를 비롯한 현지어를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친화력의 탄력을 늘 탱탱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스트레스의 벽을 넘어야 한다.

외교부 고위층 자녀에 대한 특혜는 분명 잘못된 것이고 시정되어야 한다. 외교부는 병든 부분은 과감히 도려내고 거듭나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교관은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시인
조선일보 (20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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