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시대/라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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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1-05-10 19:21 조회1,3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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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일 칼럼] 공동체 시대 세계일보
동북아 문화 상호교류의 소산
공통 정치규범 적극 모색해야
오래전의 일이지만 홍콩에 들렀다가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우연히 송나라 때의 청자를 보려고 전시관에 갔는데 그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필자는 우리 청자는 독특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렇지가 않았다. 진열된 송나라 청자의 세련된 색깔과 조형의 아름다움은 솔직히 내가 이전에 보아온 고려청자보다 뛰어난 것이었다.
그때의 충격으로 한동안 혼란스러웠는데 어느 날 청자 분야의 대가인 수집가가 책을 출판했기에 구해보고는 생각의 시각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곰페르즈라는 이 영국인 수집가는 시대별로 중국의 송·청 청자와 우리나라 고려청자를 비교하면서, 두 나라의 작품이 서로 모방하면서 점차 더 높은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교류하며 발전해가는 현상을 ‘상호 풍요화(interfertilization)’라고 설명했다. 작은 일화에 불과하지만 지역공동체에 관한 화두가 제기될 때마다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
오늘날 ‘지역공동체’라는 말은 정치적인 언어 중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나라마다 또는 새 정부가 등장할 때마다 ‘지역공동체’에 관한 새로운 비전과 구상을 내놓곤 한다. 가령 호주나 일본은 그들 국가 나름대로의 지역공동체에 대한 구상이 있고 우리도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각기 자국의 문화 우월성을 내세우며 다른 나라에 비해 그들의 문화가 가장 창조적이었다는 것임을 강조하려고 한다. 가장 흔한 문화 관련 논쟁은 어느 나라 것이며,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를 둘러싼 것이다.
이런 자국 문화독점주의 논쟁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서구에서는 근대민족국가의 건설 과정에서 ‘인종적·문화적 민족주의’와 ‘정치적 민족주의’를 일치시키려는 것이라고 하는데 특히, 후발 근대국가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현재 각국이 추진 중인 공동체 구상에 대한 공통점은 나라와 나라 혹은 정부와 정부 간의 공동체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정권의 성립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내가 만일 이 일(유럽공동체 설립)을 다시 한다면 (철과 석탄이 아닌) 문화로부터 시작하겠다’는 장 모네의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아니겠는가. 공동체의 현실성과 필요는 현재적인 것이지만 누가 먼저인가 하는 식의 문화 선점적인 논쟁은 이미 19세기적인 것인지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모든 문화는 식민지 문화’라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동북아 지역의 어떤 문화적인 성취도 나라별 업적으로 보기보다 상호 간 교류의 소산으로 보는 관점이 옳지 않을까. 때로 우리는 근대민족국가적인 관점의 틀을 고대나 중세에 적용하고 이 때문에 현실을 이해하는 데 차질을 빚는 일은 없는가 하는 생각이다. 일단 공동체의 문제를 참가국이나, 형식적인 기구 혹은 정치·경제적인 의제 등과 별도로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의 공동체로 본다면, 문화를 제쳐 두고라도 공통의 정치적 규범, 정치적인 윤리의 기준 등에 대해서도 공동체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
체제나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지역 대부분의 국가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도 동북아 지역에는 공통의 정치규범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도 없다. 예를 들면 유럽은 물론 미주나 아프리카에도 있는 지역 인권기구가 없다.
한국은 지역공동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지역공동체는 우리처럼 영토가 작은 나라가 특별히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접근 방식을 새롭게 구축하고 동북아 지역을 이끌어 갈 역할을 적극 모색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라종일 우석대 총장
세계일보/2010년 6월 13일
동북아 문화 상호교류의 소산
공통 정치규범 적극 모색해야
오래전의 일이지만 홍콩에 들렀다가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우연히 송나라 때의 청자를 보려고 전시관에 갔는데 그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필자는 우리 청자는 독특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렇지가 않았다. 진열된 송나라 청자의 세련된 색깔과 조형의 아름다움은 솔직히 내가 이전에 보아온 고려청자보다 뛰어난 것이었다.
그때의 충격으로 한동안 혼란스러웠는데 어느 날 청자 분야의 대가인 수집가가 책을 출판했기에 구해보고는 생각의 시각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곰페르즈라는 이 영국인 수집가는 시대별로 중국의 송·청 청자와 우리나라 고려청자를 비교하면서, 두 나라의 작품이 서로 모방하면서 점차 더 높은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교류하며 발전해가는 현상을 ‘상호 풍요화(interfertilization)’라고 설명했다. 작은 일화에 불과하지만 지역공동체에 관한 화두가 제기될 때마다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
오늘날 ‘지역공동체’라는 말은 정치적인 언어 중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나라마다 또는 새 정부가 등장할 때마다 ‘지역공동체’에 관한 새로운 비전과 구상을 내놓곤 한다. 가령 호주나 일본은 그들 국가 나름대로의 지역공동체에 대한 구상이 있고 우리도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각기 자국의 문화 우월성을 내세우며 다른 나라에 비해 그들의 문화가 가장 창조적이었다는 것임을 강조하려고 한다. 가장 흔한 문화 관련 논쟁은 어느 나라 것이며,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를 둘러싼 것이다.
이런 자국 문화독점주의 논쟁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서구에서는 근대민족국가의 건설 과정에서 ‘인종적·문화적 민족주의’와 ‘정치적 민족주의’를 일치시키려는 것이라고 하는데 특히, 후발 근대국가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현재 각국이 추진 중인 공동체 구상에 대한 공통점은 나라와 나라 혹은 정부와 정부 간의 공동체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정권의 성립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내가 만일 이 일(유럽공동체 설립)을 다시 한다면 (철과 석탄이 아닌) 문화로부터 시작하겠다’는 장 모네의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아니겠는가. 공동체의 현실성과 필요는 현재적인 것이지만 누가 먼저인가 하는 식의 문화 선점적인 논쟁은 이미 19세기적인 것인지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모든 문화는 식민지 문화’라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동북아 지역의 어떤 문화적인 성취도 나라별 업적으로 보기보다 상호 간 교류의 소산으로 보는 관점이 옳지 않을까. 때로 우리는 근대민족국가적인 관점의 틀을 고대나 중세에 적용하고 이 때문에 현실을 이해하는 데 차질을 빚는 일은 없는가 하는 생각이다. 일단 공동체의 문제를 참가국이나, 형식적인 기구 혹은 정치·경제적인 의제 등과 별도로 사람과 사람 간의 마음의 공동체로 본다면, 문화를 제쳐 두고라도 공통의 정치적 규범, 정치적인 윤리의 기준 등에 대해서도 공동체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
체제나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지역 대부분의 국가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도 동북아 지역에는 공통의 정치규범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도 없다. 예를 들면 유럽은 물론 미주나 아프리카에도 있는 지역 인권기구가 없다.
한국은 지역공동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지역공동체는 우리처럼 영토가 작은 나라가 특별히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접근 방식을 새롭게 구축하고 동북아 지역을 이끌어 갈 역할을 적극 모색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라종일 우석대 총장
세계일보/2010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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